서울대가 2011년 법인화 이후 처음으로 종신보장(테뉴어) 교수를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다.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중국이 수억 원이 넘는 고연봉을 앞세워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경직된 연봉 체제를 뜯어고쳐 교수진의 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5일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대는 지난달 성과연봉제 도입을 주요 골자로 한 ‘서울대 교원 보수 규정’ 개정을 완료했다. 서울대는 연내 세부 평가 규정을 완성할 계획이어서 이르면 올해 성과연봉제가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에 도입될 성과연봉제는 테뉴어 심사를 통과한 교수에 한해 적용된다. 사실상 정교수를 대상으로 하고 부교수 및 조교수는 호봉제를 유지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대 전임 교원 2344명 가운데 68%(1596명)가 정교수인 만큼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호봉제에서 성과제로의 전환은 2011년 서울대 법인화 이후 14년 만이다. 10여 년간 지지부진했던 전환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박한 처우로 인한 서울대의 인재 유출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젊은 석학들을 영입하려 해도 ‘국내 1위 대학’이라는 명예와 사명감만으로는 영입이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되레 그나마 서울대를 지켜온 ‘스타 교수’들마저 뺏길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중국처럼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지는 못한다 해도 최소한 국내 유수 사립대학과 비슷하게 연봉 체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이번 개편의 취지로 읽힌다.
이날 임호준 서울대 교수조합위원장(서어서문학과 교수)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서울대가 글로벌 유수 대학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처우가 형편없다 보니 점점 우수한 연구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면서 성과연봉제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특히 요즘 신임 교수들은 금전적 보상에 민감하다. 교수 첫 임용 나이가 평균 40세고 보통 65세면 은퇴한다. 젊은 시절을 학계에 헌신한 대가로 20여 년 동안 받게 되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서울대 교수 연봉은) 젊은 석학들에게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서울대 중장년 교수층 사이에서도 최근 대학의 미래 경쟁력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서울대는 2011년 12월 국립대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된 뒤 수차례 성과연봉제 도입을 검토했다. 하지만 번번이 추가 예산 문제 및 구체적인 성과 지표와 관련한 내부 이견 차 등으로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연공서열식 호봉제가 유지돼왔다.
이는 서울대 교수의 ‘연봉 파워’를 뚝 떨어트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서울대 정교수 평균 연봉은 1억 2173만 원으로, 국내 교수 연봉 상위 5개 대학의 73% 수준에 그쳤다. 다른 주요 대학의 경우 정교수 평균 연봉이 △KAIST 1억 4094만 원 △포항공대(포스텍) 1억 6409만 원 △연세대 1억 8470만 원 △고려대 1억 5831만 원 △성균관대 1억 9027만 원 등 모두 서울대를 크게 웃돌았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 대학과는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서울대 교수회가 2022년 발표한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 교원 임금은 QS 랭킹 기준 세계 최상위 대학 교원 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AI·반도체 등 첨단 분야를 중심으로 공격적인 인재 영입에 나선 중국의 경우 이미 2008년 공산당 주도로 시작된 ‘천인 계획(세계적인 석학 1000명 영입)’ 사업을 시작으로 해외 고급 인력 유치 및 국내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처럼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는 해외 대학이 늘어나자 기존 교수진조차 서울대를 떠나는 형국이다. 실제로 서울대 교수회는 최근 10년 내 자발적 이직 현황을 분석한 결과 “우수 역량 교원의 이직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면서 낙후된 임금 체계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 “걸출한 교육과 연구 능력을 갖춘 국내외 연구자들이 서울대 봉직을 원할 만큼의 보수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성과연봉제 도입은 철밥통 파괴의 ‘첫 단추’에 불과할 수 있으나 향후 서울대의 연구 실적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테뉴어(종신교수) 심사를 통과한 기존 전임 교원들이 적극적인 학문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기 때문이다. 임정묵 서울대 교수회장은 “교수들의 철밥통을 깨겠다고 규정화한 것은 정말 큰 결단”이라면서 “기본급(호봉)에 더해서 연구 성과급만 소정 지급하던 기존 보수 체계와 달리 연구·교육·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과를 장려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을 세우기 위해 (대학 본부가) 고심 중”이라고 전했다.
이미 서울대는 올해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성과연봉제 시행을 염두에 두고 인건비를 전년 대비 7.5% 인상한 상태다. 서울대 재경위원회는 지난해 ‘197억 원을 교원 보상 체계 개편에 따른 인건비 및 대규모 시설 사업 재원 마련을 위한 적립금으로 적립하기 위해 추가경정을 편성한다’고 결정했다. 이어 올해 1월 2025년도 법인회계 세입·세출 예산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교원 성과 중시 연봉제 도입’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등 꾸준히 물밑 작업을 진행해왔다. 임 회장은 “남은 관문은 세부 규정을 완성해 교수노조의 승인을 받고 정부와 협의해 차후 예산까지 확보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