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한국 군단의 새로운 에이스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선수는 세계 랭킹 9위 유해란(24·다올금융그룹)이다. 2023년 미국 무대에 데뷔한 그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인 투어에서 별다른 적응 시간 없이 곧바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해까지 매년 1승을 올려 통산 2승을 쌓았고 올해도 매 대회 10위권의 성적을 올리며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랭킹도 5개월 넘게 톱10을 유지하며 연착륙에 완전히 성공한 모습이다.
최근 싱가포르 센토사GC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대회장에서 만난 유해란은 “고민을 딱히 안 하는 게 투어에 잘 적응한 비결인 것 같다”면서 “다들 미국 오려면 영어도 잘해야 되고, 시차 적응도 잘해야 되고, 체력도 좋아야 되고, 음식도 잘 맞아야 되고, 이런 걱정들을 많이 하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일단 가서 부딪쳐보면서 방법을 찾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투어에 적응하는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큰 키(176㎝)와 당당한 체격의 유해란은 미국 무대에서 덤덤하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2020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신인왕 출신인 그는 국내 무대에서 통산 5승을 올린 뒤 퀄리파잉을 수석으로 통과해 2023년 LPGA 투어에 데뷔했다. 그리고 그해 신인상을 타 신지애, 이정은6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한국·미국 투어 신인상 수상자가 됐다. 지난해엔 한 시즌 성적을 포인트로 환산한 ‘레이스 투 CME 글로브’에서 시즌 7승을 올린 넬리 코르다(미국)에 이은 2위에 오른 그는 최다 버디(381개), 그린적중률 2위(76.80%) 등 각종 지표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유해란은 “우승도 있지만 지난 2년간 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신인상 수상”이라며 “신인상 연설을 위해 한달 내내 연설문만 달달 외우고 살았다. 연설 당시 조금 버벅대긴 했지만 안니카 소렌스탐한테서 상도 받고 사진도 찍어서 영광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때 이후로 영어의 중요성을 확 깨달은 것 같다. 요즘에는 영어 선생님을 포함해 매니저 언니, 캐디까지 저한테 영어를 알려주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올해로 데뷔 3년 차, 유해란이 지금까지 경험한 LPGA 투어는 어떤 곳일까. 유해란은 “온·오프를 잘 조절해야 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시즌이 정말 길어요. 보통 1월에 시작해서 11월에 끝나기 때문에 시즌 중에도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해요. 골프 칠 때는 딱 골프에 집중하고 아닐 때는 또 확실히 쉬어야 하죠. 저는 한국에 있을 땐 ‘집순이’였는데 미국에서는 쉴 때 콘서트도 가고 맛집 탐방도 하면서 리프레시하려고 노력해요.”
2023년 5승, 지난해 3승 합작에 그쳤던 LPGA 한국 군단의 일원으로서 유해란은 ‘사명감’이 든다고 했다. 그는 “여기서는 한국 선수 대부분이 캐디백에 태극기를 달고 뛴다. 그런걸 보면 한국 선수로서 사명감이 확실히 생기긴 한다”면서 “많은 나라의 선수들이 모인 곳에서 저를 포함한 한국 선수들이 더 잘 쳤으면 하는 마음은 항상 있다. 아마 저만 잘하면 한국 선수 모두가 잘 할 것”이라고 했다. 세계 1위에 대한 욕심은 없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세계 1위도 다 그냥 숫자다.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계속 열심히 하면 지금보다 더 좋아지지 않을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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