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4일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25%를 부과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 등 주요 품목에 대한 관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하거나 유예하고 나섰다. 관세 조치가 미국 경제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를 감안해 속도 조절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는 금융계와 산업계를 가리지 않고 증폭되는 양상이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5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통해 들어오는 자동차에 대해 1개월간 관세를 면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0시를 기해 캐나다와 멕시코에 25%(에너지 제품 10%)의 관세를 부과한 지 하루 만에 내놓은 조치다. 기존 USMCA 규정은 북미에서 제작된 일정량의 부품을 사용한 자동차는 관세 없이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백악관 측은 이번 조치가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스텔란티스 등 미국 자동차 빅3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못 박았다. 레빗 대변인은 “관련 업계가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관세 적용을 한 달간 면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고강도 관세 부과에 따른 소비자들의 불만과 미국 경제에 미칠 타격을 우려한 조치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AP통신은 “관세로 인해 동맹국들과의 사이가 벌어졌으며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며 “갑작스러운 자동차 분야의 한시적 관세 면제 조치는 경제적·정치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반영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앞서 3일 미국 자동차 제조 업체 단체인 자동차혁신연합(AAI)은 “모든 자동차 제조 업체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로 인해 타격을 받을 것”이라면서 “일부 자동차 모델의 가격이 최대 25%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동차와 함께 관세 타격이 큰 분야로 꼽히는 농업 부문에서도 일부 품목에 대한 관세 유예나 면제 조치를 검토하고 나섰다. 브룩 롤린스 농무부 장관은 이날 캐나다와 멕시코 관세 중 일부 농산물을 면제하는 방안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 중”이라며 “구제책을 제공하는 데 대해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칼륨·비료와 같은 산업에 대해서는 특정한 면제나 특례 조치가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한시적인 면제 조치로는 시장을 달구고 있는 물가 상승이나 경기 침체 불안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북미 수석경제학자인 폴 애시워스는 행정부의 자동차 관세 한 달 면제 조치에 대해 “다소 실망스럽다”며 “(4월 2일) 모든 국가에 대해 (상호) 관세를 부과할 때까지만 적용되는 짧은 일시적 구제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관세에 따른 경기 위축 공포는 산업계 전반에서 감지된다. 이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3월 경기 동향 보고서(베이지북)에서 “많은 기업들이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했고, 관세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또 “재정·무역정책 변화가 인플레이션 위험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진단했다. 베이지북은 12개 연방준비은행 관할 지역 중 6개 지역에서 경제활동이 정체됐고 2개 지역에서는 위축됐다고 전했다. 완만한 성장을 보인 곳은 4곳에 그쳤다. 올 1월 베이지북에서 12개 모든 지역의 경제활동이 소폭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두 달 만에 경제활동이 위축된 셈이다. 미국 채용 솔루션 업체인 ADP가 이날 발표한 2월 민간기업들의 신규 채용 일자리 수 역시 전달의 18만 6000개에서 7만 7000개로 감소했다.
월가가 전망하는 침체 가능성도 높아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의 경제 예측 모델에서 침체 가능성은 지난해 11월 말 17%에서 현재 31%로 높아졌다. 골드만삭스의 유사한 모델에서는 침체 확률이 1월 14%에서 현재 23%로 상승 중이다. 특히 골드만삭스가 각 채권금리의 격차 등 여러 지수를 기반으로 산출하는 또 다른 경제 예측 모델 기준으로는 1년 뒤 경제 위축 가능성이 46%에 달했다. JP모건의 전략가 니콜라오스 파니기르초글루는 “경제지표가 부진하고 기업과 소비자 신뢰도 약해진 상황에서 캐나다와 멕시코·중국에 관세가 부과됐다”며 “시장은 자연스럽게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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