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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전투기 민가 오폭은 ‘인재’(人災)…고개 숙인 공군총장 “큰 책임 느낀다”[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공군 “조종사 폭격 좌표 잘못 입력한 탓”

조종사 좌표 바로잡을 기회 3차례 놓쳐

훈련장 8㎞이남 엉뚱한 곳에 폭탄 투하

30㎞ 북쪽 떨어졌다면 MDL 넘어갈 뻔

“철저한 조사 재발방지 대책 마련할 것”

지난 3월 6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에서 공군 전투기 민가 오폭 사고가 발생해 사고 현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공군은 지난 3월 6일 오전 경기 포천시에서 발생한 KF-16 전투기의 민간 오폭 사고가 발생하고 1시간 30여 분이 지나서야 관련 사실을 발표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군이 공개한 사고 원인이다. 전투기 조종사의 치명적인 실수가 초래한 대형 인재(人災)인 점이다.

사고기 조종사가 비행 임무 전 표적 좌표를 잘못 입력해 당초 계획된 표적이 설치된 훈련장에서 남쪽으로 약 8km나 떨어진 곳에 비정상 투하했다는 것이다. 특히 수차례에 걸쳐 확인 절차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민가 지역에 폭탄이 투하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초래됐다는 사실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조종사의 중대 과실인 셈이다.

국방부와 공군 관계자는 사고 직후 브리핑에서 “훈련에 참여한 KF-16 2대에서 비정상 투하된 폭탄 8발 모두 탄착점을 확인했고 낙탄 위치는 승진 성당 인근 지역, 육군 부대 연병장, 도로, 농지 등”이라며 “원인은 조종사 좌표 입력 실수로 파악됐고 이는 조종사 진술로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날 사고는 경기 포천시 승진훈련장 일대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실사격 훈련 도중 발생했다. 훈련에 참가한 공군 전투기 10여 대 중 KF-16 전투기 2대가 훈련장 상공 진입 직전 갑자기 지상에 MK-82 폭탄을 투하한 것. 각각 4발씩 총 8발의 폭탄이 투하된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일대는 귀를 찢는 폭음과 거대한 포연에 휩싸이면서 전쟁통을 방불케 했다.

공군 관계자는 “이번 훈련은 1기가 사격하면 그다음 2번기가 나란히 붙어 동시 발사하는 전술훈련이었다”며 “좌표는 1·2기가 모두 입력하게 돼 있는데 2번기는 1번기가 입력한 좌표에 따라 발사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어 “비행 과정 중에 조종사가 임무를 받으면 그 임무의 좌표를 임무 이행 장비에 입력하게 돼 있는데 입력 과정에서 조종사가 잘못 입력한 것으로 현재 파악하고 있다”며 “입력 후 다시 체크해야 하는데 조종사 본인은 맞게 입력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사고로 15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10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소방 당국은 중상 2명, 경상 13명으로 분류했다. 경상자에는 군 성당에 와있던 군인 2명과, 마을에 있던 외국인 2명이 포함됐다. 중상자는 민간인 남성 2명으로 1명은 국군수도병원으로, 1명은 의정부성모병원으로 각각 긴급 이송됐다. 중상자는 우측 개방성 어깨 골절과 안면부 등을 각각 다쳤으며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월 6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공군 전투기 폭탄 오발 사고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다행스러운 점은 오폭 사고 지역은 군사분계선(MDL)에서 불과 30여㎞ 떨어진 지점이어서 만약 북한 측에 잘못 투하됐을 경우 남북 간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사고 원인은 단순했다. 전투기 기체의 문제가 아닌 엘리트 공군 조종사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다. 공군에 따르면 조종사는 훈련 임무를 부여 받은 뒤 ①사무실에서 임무 좌표를 이동식 장비에 키보드로 입력한다 ②조종사는 전투기 탑승 후 이동식 장비를 기체에 꽂아 동기화시킨다. ③실제 비행 과정에서는 육안으로 좌표와 탄착지점을 최종 확인하게 된다. 이처럼 조종사는 최소 세 차례 이상 표적 좌표가 정확한지 확인해야 했지만 이 같은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일각에선 좌표입력이 제대로 됐는지를 조종사 본인 외에 누구도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종사 개인에게 의존하는 절차와 규정에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1번기 조종사가 실수로 잘못 입력한 좌표를 바로잡을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부주의 등으로 이를 놓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게다가 1번 전투기가 기체에 잘못된 좌표가 입력된 것은 드러났지만 이와 달리 2번 전투기 조종사는 제대로 좌표를 입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편대에 속한 2번 전투기는 오폭을 피할 수 있었는데 왜 동시 오발된 것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다.

공군은 동시발사 전술훈련이라 2번 전투기기 조종사의 입력 좌표는 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군 관계자는 “이번 훈련은 1번기 사격 후 2번기가 거의 동시에 사격하도록 계획됐다”며 “1번기 사격 전후 두 조종사가 의사소통할 여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1번 전투기가 설정된 좌표가 아닌 곳에 폭탄을 투하했다는 점을 알아챘다면 2번 전투기기가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군의 사고 조사 과정에서 정확하게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1·2번기 전투기 조종사는 위관급으로 각각 400시간, 200시간 이상 비행시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KF-16은 조종사 혼자 타는 기종이다.

뿐만 아니라 항공기 관제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따져봐야 할 점이다. 2대의 전투기는 정상 투하 시 비행 경로에서 다소 벗어났고 이는 레이더에도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항공기 관제를 통해 예정 항로를 벗어난 두 전투기에 경로 이탈을 알렸다면 오폭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공군은 “계획 경로에서 좀 벗어난 건 맞지만 크게 차이가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왼쪽 첫번째)과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3월 6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공군 전투기 폭탄 오발 사고 현장을 둘러 보고 있다. 연합뉴스


오발된 MK-82 공대지 폭탄은 건물·교량 파괴 등에 사용되는 500파운드(227㎏)급 범용 폭탄이다. 직경 8m, 깊이 2.4m의 폭파구를 만들 정도로 위력이 크고 위치정보시스템(GPS) 유도 방식이 아닌 무유도 방식으로 투하된다. 폭탄 1개의 살상 반경은 축구장 1개 정도의 크기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오폭 사고의 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되기 전까지 실사격 훈련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공군은 박기완 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사고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정확한 사고 경위와 피해 상황 등 조사에 착수했다.



군 안팎에서는 이번 사고가 12·3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국방부 장관 등 주요 군 지휘부의 공석 및 대행 체제 장기화 등 어수선한 군내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도발 위협이 가중되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한미군 분담금 이상 조짐등 중대한 안보 위기 국면에서 어처구니없는 오폭 사고가 군 기강 해이로 비칠 것 같아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사고 발생에 대한 군의 늦장 대응도 문제다. 공군은 전투기 오폭 사고가 발생하고 1시간 30여 분이 지나서야 관련 사실을 알렸다. 발표가 늦어진 경위에 대해 공군 관계자는 “지상과 공중에서 다량의 실사격 훈련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이었고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은 바로 알 수 있었으나 공군 탄이 맞는지 등 정확한 상황 확인이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투기 오폭 사고로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긴급 상황에서 신속한 전파와 사후 대처 등의 대응이 너무 지체된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투기의 민간 오폭 사고라는 초유의 상황에 대해 공군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공군참모총장 명의로 곧바로 사과문을 내놓았다.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한미연합훈련 중 발생한 공군 전투기 오폭 사고에 대해 “큰 책임을 느낀다”며 “평화로운 일상 중 불의의 사고로 다치시고, 크게 놀라시고, 재산상 손해를 입으신 포천시 노곡리 주민 여러분께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주민 여러분이 입으신 정신적·신체적·재산상 피해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상해드릴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장은 이어 “공군은 이번 비정상 투하(오폭) 사고를 엄중히 인식하고, 철저히 조사해 문책할 것이며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 조종사들을 포함해 항공 무장을 다루는 모든 요원에 대한 일제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확인 절차를 보완하겠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도 군 훈련 도중 오폭·오발 사고가 잊을 만하면 벌어졌다. 다음은 2000년 이후 국내에서 발생한 주요 군 오폭·오발 사고 일지다.

△ 2001년 1월 29일 = 공군 F-5E 전투기, 전북 군산 공군기지 이륙 후 사이더와인더 공대공 미사일 1발 오발 사고. 미사일은 서해상에 떨어져 인명피해 없음.

△ 2001년 8월 7일 = 육군 20㎜ 발칸포, 서울의 한 호텔 옥상의 육군 방공진지에서 장비점검 중 남산 방면 45도 각도로 17발 오발 사고. 공중에서 자동 폭발돼 인명피해 없음.

△ 2004년 6월 1일 = F-5 공군 훈련기, 충남 보령시 웅천읍 웅천역 광장 남쪽 주차장에 연습용 포탄 오폭 사고.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으나 주차장 아스팔트 및 차량 파손.

△ 2004년 9월 3일 = 육군 대전차화기 PZF-III, 경기 포천서 사격 준비 중 철갑 파괴용 탄(직경 110㎜) 오발 사고. 병사 2명 사망, 12명 중경상.

△ 2010년 11월 28일 = 155㎜ 견인포, 경기 파주 문산 인근 육군 부대에서 1발 오발 사고. 판문점 인근 군사분계선, 남방한계선 사이 DMZ(비무장지대) 야산에 떨어져 인명피해 없음.

△ 2011년 4월 15일 = 중부전선 연천군 최전방부대에서 우리 군 상황 조치 훈련 중 북측 향해 K-6 기관총(12.7㎜) 3발 오발 사고. 김일성 99번째 생일 당일 사고 발생. 인명피해 없음.

△ 2015년 3월 28일 = 연습용 105㎜ 대전차 포탄, 미군 훈련장 영평사격장에서 날아와 주택 지붕에 추락. 인명피해 없음. 미8군 사령관 사과.

△ 2019년 3월 18일 = 춘천 공군부대에서 중거리 지대공유도탄 '천궁'(天弓) 1발 유도탄 발사대 기능 점검 중 오발 사고. 공중에서 폭발해 인명피해 없음.

△ 2020년 11월 19일 = 경기도 양평 육군 양평종합훈련장 사격훈련 중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晛弓) 1발이 훈련장에서 1.5㎞ 거리의 논에 떨어져 폭발. 인명피해 없음.

△ 2021년 1월 5일 = 대연평도 해병대 훈련 중 유도로켓 '비궁'(匕弓) 오발 사고. 해상에서 폭발해 인명피해 없음.

△ 2022년 10월 4일 = 탄도미사일 '현무-2' 1발, 지대지미사일 사격훈련 중 발사 직후 비정상적으로 비행하다가 인근 기지 내로 낙탄. 미사일 추진제 연소로 화재 발생했으나 인명 피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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