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풀려난 가운데 윤 대통령 측의 탄핵 심판 ‘변론 재개’ 움직임이 중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법원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및 검찰 기소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면서 윤 대통령 측이 헌법재판소에 변론 재개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변론 재개 시 헌재는 역대 대통령 탄핵 심판 가운데 최장 기간 심리를 진행하게 되고 이를 그대로 기각할 경우 ‘졸속 심리’라는 여권의 공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10일 평의를 열고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의 주요 쟁점들을 집중적으로 심리했다. 지난달 25일 최종 변론을 마무리한 후 헌재는 재판관 8인이 수시로 평의를 열고 최종 선고 일자를 조율 중이다. 헌재는 이날 “중요 사건 선고기일은 당사자의 절차 보장 등을 고려해 당사자 기일 통지 및 수신 확인이 이뤄진 후 공지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이런 가운데 여권 잠룡들 사이에서는 헌재에 변론 재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탄핵 심판은 재판 진행과 증거 채택 과정에 많은 문제가 지적돼왔다”며 변론 재개를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흠결을 안고 시간에 쫓겨 결론을 내릴 이유가 없으며 그럴 경우 심각한 갈등이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법에는 피청구인의 변론 재개 요청 권한이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다만 같은 법 제30조는 ‘헌법재판소의 심판 절차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되지 아니한 사항에 관해서는 민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민사소송법 제201조 ‘변론을 종결한 후에도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변론을 재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이번 탄핵 심판에서도 준용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 헌법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피청구인으로서 대통령이 중대한 절차적 하자나 새로운 증거를 근거로 변론 재개를 요청하는 것은 소송 절차상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는 전적으로 헌재의 재량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변론 재개와 관련해 윤 대통령 변호인단 측의 입장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측 대리인 윤갑근 변호사는 변론 재개 신청 여부에 대한 서울경제신문의 질문에 “현재 계획은 없지만 전반적인 자료를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 측이 변론 재개를 요청할 경우 헌재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탄핵 심판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고 정치적 혼란이 가중될 우려가 크다. 반면 변론 재개 요청을 기각하면 절차적 정당성을 두고 헌재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윤 대통령 석방 이후 탄핵 찬반을 둘러싼 국민 여론이 더욱 분열되고 있는 것은 헌재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법원의 결정으로 공수처 수사의 위법성이 드러났기 때문에 탄핵 심판도 기각돼야 한다는 주장과 구속 취소는 절차상의 흠결일 뿐이며 형사재판과 탄핵 심판은 별개라는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헌재가 변론 재개 요청을 거부하고 그대로 선고할 경우 졸속 심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그렇다고 무작정 변론을 재개할 경우 탄핵 심판이 무한정 지연될 우려도 있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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