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석방 나흘째인 11일 정중동 행보를 이어갔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헌법재판소를 압박하는 단체행동에 나서지 않기로 했지만 윤 대통령과 소통을 나눴던 의원을 중심으로 장외 투쟁을 시작하며 탄핵 반대 여론전에 불을 붙였다. 여권이 지지층 결집과 중도층 공략이라는 두 가지 과제 달성을 위한 역할 분담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한남동 관저에 머물며 별도의 메시지 없이 침묵을 지켰다. 대통령실은 “헌재의 선고 전까지 차분한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참모들도 이달 9일 기점으로 언론과의 소통을 자제하며 언행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헌재에 변론 재개 요청을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7일 서울중앙지법의 구속 취소 이후 여권에서는 헌재 심리 과정의 불공정 문제를 다퉈볼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윤 대통령 측은 실익이 크지 않다는 쪽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선고 일정이 늘어질 경우 진보 성향이 강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심판에 참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점도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여당도 공식적으로는 로키(low-key) 대응에 방점을 찍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뒤 “더불어민주당이 민생과 경제를 내팽개치고 오로지 장외 정치 투쟁에 몰두하는 데 대한 대응 방안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며 “당 지도부는 지금과 같은 기조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석방 이후 민주당이 단식·삭발 등 전방위적 강경 투쟁에 나서자 여당에서 맞대응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당 지도부는 이런 목소리에 거리를 둔 것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든 만큼 강성 지지자뿐 아니라 중도층 민심도 의식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윤 대통령 쪽으로부터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다며 광장 정치가 자칫 계엄 옹호, 헌재 부정으로 비칠 수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이날 의총 발언대에 올랐던 9명 중 6명이 장외 투쟁을, 3명이 자제를 촉구하며 의견이 엇갈렸다”며 “중도층 시각을 감안해 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도부가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윤상현 의원은 의총에서 의원직 총사퇴 결의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친윤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장외 투쟁을 개시하면서 국민의힘이 이원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윤 의원을 시작으로 장동혁·박성민·강승규 의원 등은 헌재 정문 앞에서 ‘탄핵 각하’를 촉구하는 24시간 릴레이 시위에 돌입했다. 윤 의원, 박 의원 등은 서울구치소를 찾아 윤 대통령을 면담하는 등 탄핵 정국에서 목소리를 키워온 인물들이다.
윤 의원은 시위에서 “탄핵 심판 각하만이 대한민국 체제를 바로 세우고 비정상을 다시 정상화하는 길”이라며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고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헌법재판관 8명이 생각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원내대표는 릴레이 시위에 “각자의 소신과 판단에 따라서 한 부분”이라며 “지도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도, 지침을 줄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친윤계와 윤 대통령 변호인단의 접촉면도 넓어지는 모습이다. 이날 릴레이 시위 소식을 윤 대통령 변호인단이 공식화했는데 여당 인사들의 일정을 윤 대통령 측이 알린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 전까지 양측이 손발을 맞추며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는 메시지와 구도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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