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희의 일본톡에서는 외신 속 일본의 이모저모, 국제 이슈의 요모조모를 짚어봅니다. 닮은듯 다른, 그래서 더 궁금한 이웃나라 이야기 시작합니다.
‘키자니아’라고 아시나요? 아이를 둔 부모님에겐 익숙한 단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키자니아는 실제 크기의 3분의 2로 축소된 세트장에서 약 100종의 다양한 직업을 경험할 수 있는 어린이용 테마파크인데요. 멕시코에서 1999년 처음 선보인 뒤 세를 불려 현재 18개국에서 27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서울 잠실과 부산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곳이죠. 원래 이곳은 3~15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 키자니아에서 독특한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어린이가 아닌, 성인들이 체험자로 등장한 것입니다. 다 큰(?) 어른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어른만 입장” 日키자니아의 특별한 하루
일본 키자니아 도쿄는 지난달 20일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바로 ‘어른 키자니아.’ 이날은 입장객이 16세 이상 성인으로 제한됐습니다. 운영사는 행사 개최 배경으로 “성인들의 다양한 직업 체험 수요”를 들었는데요. 사회 진출을 앞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에겐 시야를 넓히는 기회를, 이미 직장 생활 중인 사람들은 새로운 배움이나 리스킬링(재교육)의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1인당 참가비는 5만5000엔이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날 ‘현재와 다른 직업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참가자가 많았습니다. 금융기관에 근무하고 있다는 20대 여성은 택배 배달원으로 변신했는데요. 이 여성은 “학생 시절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지만, B2C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취업할 때는 B2B만 봤다”며 “만약 다른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서 왔다”고 참여 이유를 밝혔습니다.
현실판 어른 키자니아, 스폿워크?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는 체험관을 넘어 현실에서도 ‘어른판 키자니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근로 형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바로 ‘스폿워크(spot work)’입니다.
스폿워크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초 단시간, 일회성으로 일하는 일종의 ‘틈새 아르바이트’입니다. 기업이나 가게는 인력이 필요한 시간대에 구인 공고를 내고, 구직자는 자신의 여유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매칭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선택해 고용 계약을 맺는 방식입니다. 경험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여러 체험으로 자신의 진로나 본업 관련 지식을 쌓을 수 있다는 데서 키자니아와 맥을 같이한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단, 아마추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은 아직은 스폿워크가 커리어 형성으로 이어질 만큼 전문 작업을 많이 취급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겠죠.
기업의 인력 부족 문제에 ‘원하는 때 일하겠다’는 인식이 더해지면서 이런 근로 방식은 빠르게 확산 중입니다. 일본 스폿워크협회에 따르면 주요 스폿워크 중개 업체(4곳) 등록자 수는 지난해 9월 기준 25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정규직으로 매일, 규칙적인 업무가 어려운 주부나 고령자는 물론, 일반 직장인들도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폿워크는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일본 재무성이 지난해 낸 관련 보고서를 보면 스폿워크 선호의 이유도 명확하게 보입니다. 4595명을 대상으로 스폿워크와 이를 제외한 일반 아르바이트를 비교해 ‘편의성’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요. ‘근무 종료 후 바로 돈을 받을 수 있어 편리하다고 생각한다’는 항목에서 스폿워크와 일반 아르바이트는 각각 95.9%, 38.0%의 응답률을 보였습니다. ‘이력서·면접이 없이 근무가 결정돼 편하다’는 반응도 스폿워크(97.4%)가 일반 아르바이트(41.5%)의 두 배 이상이었고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에서도 스폿워크 94.4%, 일반 아르바이트 51.6%의 격차가 나타났습니다. 고용주 대상 조사에서도 단발성, 매칭(희망 인재 채용 가능성), 고용 절차의 용이함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일시적인 결원 보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요.
시간·업무 선택 가능 VS 일 빈도·급여·지위 불안
물론 이 새로운 방식에도 구멍은 많습니다. 일의 양과 빈도가 일정하지 않아 월별 수입에 큰 변동이 생기기 쉽고,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른 일자리 차이, 개인 사정이나 건강 상태에 따른 근무 가능 일수 변화 등도 불안정 요소로 꼽힙니다. 사회보장제도 대응 방안, 당일 취소나 무단 결근과 같은 문제도 풀어야 할 사안으로 꾸준히 지적되고 있죠. 이에 스폿워크 협회는 자격 인증과 교육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인증 제도나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최근 한국인의 평균 퇴직 연령이 49.4세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100세를 넘어 110세 시대라는 요즘, 은퇴 후 남은 50~60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커지는 때입니다. 중장년층이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살려 원하는 때에 일할 수 있는 환경, 새로운 직업을 쉽게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긴 인생 2막을 더 의미 있게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나의 다음 직업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이웃 나라의 사례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저는 더 흥미로운 다음 일본톡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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