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무는 결국 무용수들이 춤을 추도록 하는 일종의 ‘구실(excuse)’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카당스’ 역시 무용수들이 뛰노는 하나의 놀이터이자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도록 초대해 그 춤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것을 목표로 하죠.”
이스라엘 출신의 스타 안무가인 오하드 나하린은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작품 ‘데카당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나하린은 동시대 가장 혁신적인 안무가로 꼽히며 모국 이스라엘의 바체바무용단에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인물이다. 국내 최초 공공 컨템퍼러리 발레단을 표방하며 지난해 창단한 서울시발레단이 올해 첫 무대로 선택한 ‘데카당스’는 나하린의 대표작들을 발췌해 하나의 공연으로 재구성한 일종의 콜라주 작품으로 2000년 초연됐다. 한국에서도 2002년 공연된 적이 있으나 ‘데카당스’는 무용단마다 작품 구성이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나하린 역시 데카당스에 대해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자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진화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14일부터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공연될 2025 데카당스 역시 서울시발레단에 의한 단 하나뿐인 작품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 데카당스는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서울시발레단의 2025 데카당스는 ‘마이너스 16(Minus 16)’ ‘아나파자(Anaphaza)’ ‘베네수엘라(Venezuela)’ 등 1993~2023년 발표된 나하린의 대표작 7편을 엮은 구성으로 선보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개막을 나흘 앞두고 방한한 나하린 감독이 무용수들을 직접 지도하면서 구성이 달라졌다. 그는 “열흘 전 미리 한국에 와 있던 안무가로부터 무용수들의 공연 영상을 받아봤는데, 이 작품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좀 더 섬세한 무용수 개개인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구성을 더해 강력한 감정을 이끌어낼 공간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두 개의 섹션을 추가했는데 6명의 무용수가 함께 움직이는 장면과 무대 위 무용수들이 협력해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움직이는 ‘픽쳐’라는 섹션”이라고 설명했다.
개막 이틀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여념이 없는 그는 한국의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하는 소감도 전했다. “춤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지리나 종교, 민족의 차이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서두를 꺼낸 나하린은 “우리는 모두 춤을 추는 사람들이고 우리가 왜 함께 춤을 추는 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정형화된 안무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은 무용수들이 가진 무언가에서 발현되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발견해 꺼내주는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라며 “열쇠로 열어 보석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국에 이틀 머물렀지만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나의 언어는 춤”이라는 나하린은 무용수뿐 아니라 모두가 춤을 추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리고 춤은 결국 우리가 고달픈 삶을 견디고 행복해지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라고 강조했다. 그는 “춤을 추는 이점은 매우 많은데, 나 역시 춤을 추는 순간에는 공연·무대·관객 너머 오로지 나만이 존재하는 경험을 한다”며 “우리 몸 자체가 감옥 같다고 여겨지는 순간 춤은 이 몸의 감옥에서 우리를 꺼내 자유롭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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