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부터 살려내! 교통사고래. CPR 중인데 백 교수가 좀 도와줘야 될 거 같네. 백 교수, 우리 지영이부터 살려 주면 안 될까?”
“지금 당신 딸 살리러 간다고. 당신 때문에 지체된 시간만큼 당신 딸이 더 위험해진 거야. 알았어?”
올 초 공개와 동시에 화제몰이를 한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4화의 한 장면이다. 극 중 천재 외과 전문의로 등장하는 백강혁이 예산 회의 도중 평소 앙숙관계였던 항문외과 과장 한유림의 전화를 받고 외동딸 한지영을 살리러 가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교통사고로 심장이 파열된 환자의 수술 부위에 임시방편으로 수술용 장갑을 덧대고 출혈을 막으며 수술을 이어가는 과정은 실제 상황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 이 긴박한 수술 장면에서 백강혁의 클로즈업된 손은 배우 주지훈이 아닌 '대역'의 것으로 드러났다. 외과의사가 아닌 남자간호사가 대역을 맡았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더한다.
12일 이대서울병원에 따르면 '중증외상센터' 속 백강혁의 손으로 열연한 주인공은 이 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소속 체외순환사인 양원준 간호사다.
양 간호사는 병원에서 드라마를 촬영할 당시 자문단장을 맡았던 김태윤 중환자외과 교수의 소개로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 제작진은 정교하고 전문적인 수술 장면을 위해 주지훈과 손이 비슷하면서도 관련 스킬을 가진 대역을 찾고 있었는데, 김 교수가 소식을 듣고 양 간호사에게 연락한 것이다.
심장혈관흉부외과 수술 중에는 심장을 멈추고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체외순환사는 이럴 때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심폐장치, 일명 '에크모'(ECMO)를 조작하고 수술을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업무상 심장수술 과정을 잘 아는 데다 오디션 때 손 크기와 모양 면에서도 '합격'을 받아 드라마 수술 장면에서 손 연기를 펼치게 됐다.
양 간호사는 "심장 파열 수술 장면이나 대동맥 수술 장면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심혈을 기울였다"며 "제작진에 대사나 연출에 조언해드릴 정도로 각별히 신경 쓰고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자 촬영 현장에서 소품을 만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료인으로서 첫 경험을 심장혈관흉부외과에서 시작하면서 숱한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는데 이 작품이 나름의 해우소가 됐다"며 "드라마 속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넘나드는 천장미 간호사처럼 동료와 환자에게 믿음직한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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