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 뿐 아니라 생산자 물가도 안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금융 시장은 물가보다 관세를 걱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에 대해 새로운 관세 위협을 가하고, 러시아는 사실상 우크라이나와의 휴전을 거부하면서 뉴욕증시는 하락했다. 안전자산 수요로 금값은 치솟았고 미국 국채 금리는 다시 내려갔다. 이날 증시를 비롯한 금융자산 시장의 흐름을 관통한 일관된 요인은 ‘경제 둔화 우려’였다.
13일(현지 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537.36포인트(-1.30%) 떨어진 4만813.57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77.78포인트(-1.39%) 하락한 5521.52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345.44(-1.96%) 내린 1만7303.01에 장을 마감했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인플레이션에 긍정적인 지표가 발표됐지만 시장을 연이틀 끌어올리는 데는 힘이 부쳤다. 이날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2월 PPI지수 상승률은 전월대비 ‘0.0%’를 기록했다. 전월 상승률 0.6%에서 둔화했으며 시장 전망치 0.3%를 하회했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PI 상승률은 -0.1%로 하락했다.
이 지표는 장이 열리기 전 발표됐지만 증시는 하락 출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EU에서 수입되는 알코올 제품에 2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대해 유럽 연합이 미국 산 오토바이와 위스키 등에 맞불 관세를 놓자 트럼프 대통령이 재보복에 나선 것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은 2024년에 EU에서 약 54억 달러 상당의 와인, 10억 달러 상당의 맥주, 35억 달러 규모의 보드카와 위스키 등을 수입했다. 인터랙티브브로커스의 수석 전략가인 스티브소스닉은 “관세 불확실성이 또다시 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휴전을 꺼리면서 국제 정세도 투심에 힘이 되지 못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와 30일간 휴전하는 방안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추가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 “트럼프 성적표 ‘A’아냐…최근 증시하락 이유는 경제 둔화 전망”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이날 발간한 보고서에서 자체 모델로 분석한 결과 최근의 주가 하락은 실적이나 금리 전망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경제 둔화 전망에 따른 것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S&P500은 약 9% 하락했으며 경제 성장 기대로 취임 전 까지 상승하던 10년물 국채 금리도 35bp 가량 하락했다. 비트코인은 약 25%, 달러지수는 6% 하락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식시장을 정책에 대한 일간 평가로 본다고 하면, 현재까지 성적은 적어도 A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날 2월 CPI보고서로 주가가 소폭 반등한 것도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고 봤다. ‘트럼프세션(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발 경기 침체)’ 가능성이 시간이 갈 수록 더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서치업체인 알파인 매크로는 “관세 관련 고통이 최고조로 치솟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고 4~7월 무렵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자동차와 의약품, 반도체 등에 대한 25%의 관세 △주요 무역상대국에 대한 상호 관세 △중국과 EU를 표적으로 한 더 높은 관세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추가 국경 관세 등이 아직 남아있다는 관측에서다. 알파인 리서치는 “시장은 아직 이런 상황을 완전히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개인투자자들의 심리도 위축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개인투자자협회의 최신 조사에 따르면 앞으로 6개월 증시 전망과 관련 소매 투자자의 약 60%가 3주 연속으로 주가 약세를 전망했다.
트럼프 호재에도 비트코인 하락, ‘안전자산’ 금만 웃었다
미국 국채 시장을 보면 투자자들의 불안과 우려 지점이 어디에서 어떻게 변하고 있는 지 뚜렷이 드러난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후 최근까지 경제 침체 전망에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후 최근 며칠간 다시 금리가 급등하는 의외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침체를 걱정하던 채권 트레이더들이 관세 인상으로 인해 추후 인플레이션이 재개될 가능성을 더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침체 우려에 물가 우려까지 반영한 움직임이란 설명이다. 그리고 이날 투자자들은 다시 침체 우려에 더욱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이날 4.273%로 전거래일보다 4.2bp(1bp=0.01%포인트)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의 지분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가상자산 투자자들도 침체 전망에 더 무게를 뒀다. 비트코인은 24시간 전 대비 2.9% 내린 8만419달러에 거래됐다. 이더는 1.84%내린 1842달러를 기록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가족이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미국 법인에 대한 지분 확보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은 승승장구했다. 이날 국제 금 현물 가격은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지자 안전자산 수요가 높아졌다. 금 현물 가격은 이날 미 동부시간 오후 2시께 전장보다 1.6% 오른 온스당 2979.76달러에 거래되며 이날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4월 만기 금 선물 종가는 온스당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991.3달러로 전장보다 1.5%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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