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發) 법률 시장 개방 가능성에 국내 중대형 로펌 사이에 합종연횡 등 생존 전략 논의가 활발하다. 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력으로 우리나라 법률 시장이 현행 3단계 개방에서 4단계로 확대할 경우, 외국 법무법인(로펌)이 국내 로펌을 인수하거나, 외국 로펌이 한국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도 트럼프 정부의 법률 시장 개방 요구에 대비해 최근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등 전략 마련에 착수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최근 4단계 법률 시장 개방 요청에 대비한 연구 용역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용역에서는 외국 로펌이 한국 변호사들을 고용했을 때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고 전했다. 지난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무역장벽 보고서(NTE)는 이미 우리나라 법률시장 장벽에 대해 △외국 로펌 지분제한(49%) △한국 변호사 채용 제한 등을 지적한 바 있다.
현재까지 트럼프 정부가 우리나라 정부에 법률 시장 개방을 요구하진 않았다. 다만 미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어 언제든지 한국 법률 시장 추가 개방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관측이다.
법조계에서는 4단계 개방 논의가 국내 로펌 사이 합병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외국 로펌이 국내 로펌과 합작법인 설립 시 취득할 수 있는 지분에 대한 제한이 사라지고, 한국변호사를 직접 고용할 수 있게 될 경우 법조시장 판도가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17년 3단계 개방 직후 국내 법률 시장은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고요했다. 법무부의 합작법인 인가는 2022년에서야 처음으로 성사됐다. 2024년 4월 기준 합작법인은 △법무법인 화현과 영국 로펌 애셔스트(Ashurst) △법무법인 케이엘파트너스와 미국 베이커맥켄지(Baker Mckenzie)등 2곳에 불과하다. 그동안 외국 로펌의 합작법인 지분 보유 제한 탓에 국내 법률 시장에 큰 변화가 없었으나, 4단계 개방 때에는 이와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법률 시장 추가 개방으로 중소형 로펌들이 이중고에 처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국내 로펌의 한 대표 변호사는 “글로벌 로펌 입장에서 인지도 높은 국내 로펌과의 협력을 선호하지 않겠나”라며 “중소형 로펌들은 대안으로 서로 간의 합병을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대형 로펌으로의 진입을 목전에 둔 중대형 로펌들은 이번 개방에 따른 수혜를 기대 중이다. 실제 법률 시장 개방 때마다 국내 중대형 로펌들은 잇따른 합병 등으로 시장 재편을 주도했다. 대륙과 아주(2009년), 원과 조은(2010년) 등이 합병했다. 바른과 화우의 경우 2018년 합병을 추진했지만, 내부 의견 차로 협상은 최종 무산됐다.
한편 국내 대형 로펌들은 외국 로펌과의 경쟁 심화에 대비해 해외 자문 역량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해 11월부터 ‘트럼프 2기 통상 규제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국내 기업들이 보호무역주의 등 각종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도록 자문하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은 2023~2024년 2년 사이 외국 변호사 20명을 영입했다. 이어 인공지능, 가상자산산업, 해외 디스커버리 및 컴플라이언스 전문 변호사도 영입할 계획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이달 5일 통상전략혁신 허브(Trade Strategy & Innovation Hub)를 설립하고 관세, 통상협상 분야의 자문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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