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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평온, 속으론 혼란…끊임없는 반전세계

◆모나 하툼 韓 첫 개인전

약품함에 수류탄, 가림막엔 철조망

조각·설치 등 주요작 20여점 선봬

내달 12일까지 화이트큐브 서울서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 전시장에 모나 하툼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 제공=화이트큐브




약병이 놓여있어야 할 의약품 캐비닛 안은 형형색색 유리 수류탄으로 채워지고, 편안해야 할 휠체어는 손잡이에 톱날을 달고 어디 한번 앉아보라는 듯 차가운 기운을 풍긴다. 사생활 보호 등을 목적으로 병원에서 주로 쓰이는 침대 가림막은 뾰족한 가시를 품은 금속 철조망으로 바뀌어 접근을 제한하고, 구불구불한 창자를 뭉쳐 놓은 듯한 거대한 구와 내장을 연상시키는 핏빛 유리 오브제는 신체 밖으로 꺼내져 전시장의 한가운데 혹은 구석의 나무 박스 안에 무심히 툭 던져졌다.

모나 하툼의 1999년작 '무제(휠체어 II)'의 전체 사진과 근접 사진. 사진 제공=화이트큐브


모나 하툼의 신작 '분리(Divide, 2025)'의 전체 사진과 근접 사진. 사진 제공=화이트큐브


서울 청담동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모나 하툼의 한국 첫 개인전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하툼이 1999년부터 최근까지 제작한 조각, 설치, 드로잉 등 주요 작품 20여 점이 공개된다. 한국 첫 개인전을 맞아 작가의 25년 예술적 탐구 여정을 집중 조명하겠다는 취지다. 하툼은 파리 퐁피두센터와 런던 테이트모던, 베이징 울렌스현대미술센터(UCCA)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작가다. 그는 1997년 광주비엔날레 등 그룹전으로 7차례 한국 관람객들을 만났지만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가의 세계는 반전과 모순으로 가득하다. 치유가 파괴로, 보호가 위협으로, 구분이 배척으로 바뀌는 그의 세계에서 관람객들은 일상의 평온함을 의심하게 되고 혼란과 긴장에 사로잡힌다. 레바논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 가정에서 태어나 20대 초반 영국 런던을 잠시 방문했던 동안 내전이 발발해 런던에 정착하게 됐던 복잡한 개인사가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작가가 풀어내는 방식은 무겁기보다 위트가 있다. 익숙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낯설게 만드는 전략을 주로 쓰는데 완성된 작품은 미학적으로도 무척 세련돼 관람객의 시선을 잡아 끈다.



관람객이 모나 하툼의 작품 ‘미스바(Misbah, 2006?2007)’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 제공=화이트큐브


전시장 안쪽 공간을 밝히며 빙글빙글 돌고 있는 작품 ‘미스바(Misbah)’가 대표적이다. 황동으로 제작된 램프 덮개에는 총을 든 병사와 폭발로 인한 화염을 상징하는 별들이 새겨졌다. 어두운 공간에서 램프가 불을 밝히면 사방이 행군하는 빛의 병사들로 가득한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아랍어로 불을 밝히는 등을 뜻하는 미스바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빛을 주는 사람’ 즉 지식인의 은유로 자주 사용된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작품의 의미는 더욱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빠진 머리카락을 굴려 구슬 형태로 만든 후 목걸이로 꿴 ‘헤어 네크리스’나 홍콩에서 구한 대나무 새장에 머리카락 구슬을 소중히 보관한 ‘무제(홍콩 케이지) II’ 등도 눈길을 끈다. 머리카락이라는 하찮은 재료를 고급 보석이나 귀한 물건처럼 보이게 만든 작업으로 안팎을 뒤집은 또 다른 반전이다. 실제 1995년 제작된 ‘헤어 네크리스’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카르티에의 매장 쇼윈도를 장식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작품은 갈색이었지만 이번 신작은 ‘실버’ 버전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작가의 모발이 은빛으로 변해서라고 한다. 전시는 4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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