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2000명 증원'에서 비롯된 의정갈등이 1년 넘게 출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정부가 일선 병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가동하고 있는 비상진료체계가 건강보험 적자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올해도 비상진료체계가 계속된다면 연말까지 건강보험 누적 적자액이 1조 7000억 원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진선미 의원실은 16일 국회예산정책처가 제출한 '건강보험 재정 전망'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비상진료체계를 작년 말에 종료했다고 가정한 추계값보다 건강보험 누적 적자액이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비상진료체계는 보건의료 위기 시 중증·응급환자 진료 등을 독려하기 위해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을 이용해 의료기관을 지원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는 작년 2월 의료개혁 4대 과제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한 후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는 등 의정갈등이 본격화하자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 최상위 단계인 '심각'을 발령했다.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떠나고 의사가 부족해 진료량이 줄자 일부 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를 한시적으로 인상하고, 수련병원에 건보 급여를 선지급하는 등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정부가 작년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비상진료 건강보험 수가 한시 인상에 투입한 건보 재정은 1조4157억 원에 달한다. 의료개혁이란 명분 아래 근 1년간 매달 2000억 원 안팎의 건보 재정을 투입한 셈이다.
정부는 이 재정을 △응급진료체계 유지 지원 △경증 환자 회송지원 △중증·응급 입원진료 지원 △일반 입원진료 지원 등에 활용했다. 의료기관 미청구로 지급되지 않은 금액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지원금 총액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경영난에 처한 수련병원들에 작년 7∼9월 대출 개념으로 지급한 건보 급여비 선지급 금액은 모두 1조4844억원이었다. 각 수련병원은 선지급 받은 급여비를 올해 4월부터 상환해야 하는데, 대부분 진료량이 의정갈등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아 난감해하고 있는 처지다.
정부가 비상진료체계를 작년 12월까지 가동했더라도 건보 재정은 2026년에 적자로 전환되고 2030년엔 누적 준비금이 소진된다. 비상진료체계를 올해 말까지 가동한다고 가정할 경우 건보 재정 적자시점과 누적 준비금 소진 시점은 동일하다. 다만 비상진료체계가 작년에 종료됐다고 가정했을 때보다 향후 10년간 누적 적자액은 1조7000억원 증가한다.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위기경보 심각 단계 해지 시까지 가동할 계획이다.
이는 정부가 작년 8월 발표한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에 따른 건보 재정 투자를 포함하지 않은 계산값이다. 향후 정부 계획이 실행되면 건보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정부는 향후 5년간 의료개혁에 국가재정 10조 원과 건보 재정 10조 원 등 총 20조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진선미 의원은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 추진이 결국 막대한 재정 투입으로 이어지고 있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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