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가격 경쟁력만을 내세웠던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자율주행 등 최첨단 기술력에서도 세계 최고 자리를 넘보고 나섰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견제에도 자체 기술력을 앞세워 테슬라 등 기존 업체들의 아성을 위협할 것으로 내다봤다.
20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지리자동차그룹 산하의 고급 전기차 브랜드 지커(Zeekr)는 지난 18일 저장성 항저우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레벨3’ 자율주행 기능 ‘G-파일럿(G-Pilot)’을 탑재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9X’를 다음 달 상하이 오토쇼에서 공개한다고 밝혔다. 레벨3은 레벨1~5로 나뉘는 자율주행 기능 가운데 스스로 추월하거나 장애물을 피할 수는 있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운전자가 개입해야 하는 조건부 단계를 뜻한다.
지커는 9X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자율주행 차량용 반도체 ‘토르’ 2개를 활용한 컨트롤러(조종 장치)도 탑재하기로 했다. 이 컨트롤러의 컴퓨팅 파워는 현재 지커 차량에 적용된 제품보다 175% 향상된 1400 TOPS(1초당 1조 번의 연산 능력)다. 지커는 이날 최고 시속 130㎞로 주행하는 환경에서 너비 40㎝, 높이 60㎝ 이상인 장애물을 식별하고 이를 자동으로 회피하는 기능을 시연한 영상도 소개했다. 또 인터넷과 위성항법장치(GPS) 신호가 없는 지하 주차장에서도 운전자의 개입 없이 빈 곳을 찾아 주차하는 기능도 함께 선보였다.
안충후이 지커 최고경영자(CEO)는 “9X에 라이다(외장 센서)도 5개 장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순수전기차 제조 업체 샤오펑(Xpeng)도 같은 날 실적 설명회에서 올 하반기에 레벨3, 내년에는 ‘레벨4’ 수준의 소프트웨어 능력을 갖춘 신차를 양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광저우자동차그룹(GAC)도 올해 레벨3 수준의 신차 판매를 시작하면서 레벨4 모델도 개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레벨4는 특정 조건 아래에서는 모든 자율주행 기능이 작동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개입할 필요가 없는 단계다.
최근 미래차 영역에서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술력을 과시한 중국 기업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세계 전기차 시장 1위 기업인 중국의 비야디(BYD)는 17일 내연기관 차량 주유 시간만큼 빠르게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배터리 시스템을 선보이며 경쟁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BYD는 5분만 충전하면 400㎞를 주행할 수 있는 ‘슈퍼 e-플랫폼’을 전격 공개했는데 이는 15분을 충전해 275㎞를 주행하는 테슬라의 ‘슈퍼차저’는 물론 메르세데스벤츠가 지난주 공개한 10분 충전으로 325㎞를 주행할 수 있는 CLA 전기차 세단보다도 앞선 기술이었다. 이 시스템을 사용하면 전기차가 정지 상태에서도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2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BYD는 더 나아가 슈퍼 e-플랫폼을 양산 승용차에 적용해 1000V의 고전압과 테슬라의 2배가 넘는 1000㎾의 충전 전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BYD는 지난달에도 자사 자율주행 시스템인 ‘신의 눈(天神之眼)’을 모든 차종에 무료로 장착하겠다는 혁신적인 경영 방침을 내놓기도 했다. 신의 눈은 BYD가 2023년 처음 선보인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카메라와 레이더 센서를 활용해 원격 주차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테슬라는 3만 2000달러(약 4600만 원) 이상 모델부터 자율주행 기능을 적용하지만 BYD는 10만 위안(약 2000만 원)짜리 저가 차량에도 이를 장착하기로 했다. BYD는 또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의 AI 소프트웨어도 차량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월가와 업계에서는 테슬라의 입지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테슬라가 다음 달 16일까지 중국에서 자사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FSD’를 한 달간 무료로 사용하게 하는 특단의 카드까지 꺼냈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운 상태다. 중국 업체들이 가격뿐 아니라 기술에서도 테슬라보다 우위를 점하면서 올 들어 테슬라의 주가는 급락한 반면 BYD는 50% 이상 급등하고 있다. JP모건은 “1분기 전기차 인도량이 지난해 동기보다 8% 감소할 것”이라며 135달러였던 테슬라의 목표주가를 월가에서 가장 낮은 120달러로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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