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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 'We Can Do It' 한줄에…공장으로 향한 美 여성들

■유혹의 전략, 광고의 세계사(김동규 지음, 푸른역사 펴냄)  

女 노동참여 독려한 '리벳공 로지'

자동차 광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

시장 변화시키고 시대를 뒤집어

로마시대 벽간판부터 AI 광고까지

메커니즘 변화·세계사적 흐름 통찰

흥미로운 거장들의 일대기도 담아

1942년 미국 정부 의뢰로 광고대행사 JWT가 제작하고 하워드 밀러가 그린 포스터는 일명 ‘리벳공 리지’로 불리며 반 세기 넘게 여성 노동자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출처=위키피디아/사진제공=푸른역사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18~39세 미국 남성 수백 만 명이 전쟁에 투입됐다. 산업 현장은 극심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고 고육지책으로 떠올린 것이 가정에 남아 있던 여성들이다. 하지만 당대 분위기는 일하는 여성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여성의 노동 참여를 독려하고자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쳤는데 이때 한 장의 포스터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붉은색 물방울 무늬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푸른색 유니폼의 팔을 걷어 부친 채 이두박근을 불끈 내보이며 “우리는 할 수 있다(We Can Do It)”고 외치는 젊은 여성. ‘리벳공 로지’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선명했다. “여성은 강하다. 그러므로 남자들의 중노동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그녀의 이미지에 설득된 수많은 여성들이 군수품 생산을 위한 중공업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실제 1940년 1300만 명이었던 미국 여성 노동자 수는 4년 뒤 1815만 명까지 늘어났다.

‘리벳공 로지’는 1942년 미국 정부 의뢰를 받아 광고대행사 JWT가 제작한 선전물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광고계의 일급 베테랑들은 상업 광고에 대한 열정을 잠시 접고 승전을 위한 선전물 제작에 뛰어들었다. 물건 판매를 위해 갈고닦았던 설득의 기술들이 아낌없이 발휘됐고 ‘걸작’이 줄줄이 탄생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포스터로 꼽히는 ‘엉클 샘의 모병 포스터’도 1917년 1차 세계대전 당시 등장했다. 눈을 부릅뜬 흰 수염의 신사가 정면을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미군은 당신을 원한다”고 외치는 모습에 이끌려 수백 만 청년들이 군복을 입었다.

J.M. 플래그가 1917년 그린 일명 ‘엉클 샘’의 모병 포스터 /출처=위키피디아


대중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창의성을 뽐냈다니 나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872쪽에 달하는 책에서 광고인들이 집행했던 ‘전쟁 프로파간다’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극히 일부이니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다. 여러 광고상을 받은 현장 출신 교수가 쓴 책은 로마 시대의 벽 간판 광고에서부터 21세기 최첨단 스마트미디어 광고에 이르기까지 2000년에 걸친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역사를 집대성한다.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공기는 질소와 산소와 광고로 구성돼 있다. 우리는 광고 속을 헤엄쳐 다닌다”는 프랑스 수필가 로베르 게랭의 말처럼 우리의 삶 속에 자연스레 들어와 있는 광고의 다층적이고 복잡한 면모를 꼼꼼히 살펴보는 대작이다.

기나긴 시간의 흐름을 정돈하기 위해 광고 전략인 ‘소구(appeal)’를 중심 축으로 삼았다. 소구란 상품·서비스를 팔기 위해 소비자를 유혹하고 설득하는 광고의 접근법이다. 크게 ‘하드 셀(Hard sell)’과 ‘소프트 셀(Soft sell)’로 구분되는데 하드 셀은 논리와 언어를 무기로 소비자의 두뇌를 망치로 때리듯 직접 설득하는 방법이다. 가격이나 성능의 장점을 드러내며 “이래도 안 살 거야”라고 소비자에 말을 건다. 반면 소프트 셀은 우회적 카피와 상징적인 비주얼로 감정을 자극해 행동 변화를 이끈다.



소형차 붐을 이끌었던 폭스바겐의 ‘Think small’ 광고 /사진 제공=푸른역사


책은 시대순으로 구성됐지만 단순히 시간 흐름에 따른 트렌드 변화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선다. 광고는 사람들을 유혹해 새로운 물건을 사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동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반영하는 한편 새로운 문화를 이끌기도 했다. 일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Think small)’는 역사적인 문구를 탄생시켰던 폭스바겐의 1959년 광고는 대형차 중심의 차 소비 시장을 뒤집은 동시에 과시를 거부하고자 했던 1960년대 히피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 광고다.

책은 광고계의 전설로 기억되는 거장들의 일대기도 흥미진진하게 담았다. ‘광고의 세계사’를 넘어 광고 산업의 숨겨진 작동 원리까지 들여다본 저작은 대중 독자는 물론 광고인·광고학도들에게도 유용한 시사점을 줄 전망이다. 4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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