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유럽 국가들이 ‘미국 없는 안보’ 태세를 갖추기 위한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다만 유럽연합(EU)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다음 달 1일(현지 시간)부터 부과하려던 대미 보복관세가 미뤄지고 우크라이나 지원안 합의도 실패하는 등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일 영국·프랑스·독일과 북유럽 군사 강국들이 그간 미국이 나토에서 맡았던 군사·재정적 역할을 5∼10년에 걸쳐 넘겨받기 위한 계획을 비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나토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질서 있는 군사력 이전’ 방안 마련에 나서는 것이다. FT는 유럽 국가들이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나토 연례 정상회의 전에 이 같은 계획을 미국에 제안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CNN도 “미군이 나토 최고사령관 지위에서 발을 빼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 동맹국들과 캐나다는 앞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을 군비 확충에 퍼부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EU 회원국 상당수가 자국의 이해에 집착하는 탓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항할 구심력이 조성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EU는 “미국의 상호관세 내용부터 지켜보겠다”며 다음 달 1일부터 시행하려던 대미 보복관세 1단계 조치를 미루기로 했다.
EU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가진 정상회의에서도 러시아에 종전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데 실패했다. 또 프랑스·이탈리아 등이 재정 부담으로 난색을 표하면서 최대 400억 유로(약 63조 5000억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긴급 군사 지원안도 합의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50억 유로(약 8조 원)의 탄약 지원안조차 동의를 얻지 못했으며 유럽 종전특사 지명을 둘러싸고는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EU가 전날 발표한 ‘2030년 국방백서’에도 네덜란드 등의 반대로 ‘국방 공동 채권(유로본드)’ 발행 내용은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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