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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아들 위한 엄마의 고군분투…“근데 이 여자 좀 비호감인데”

■연극 '그의 어머니' 연습실 공개

4월 2~1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배우 김선영(오른쪽)이 19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연습실에서 연극 '그의 어머니' 연습 장면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립극단




조용히 신문을 읽던 여성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의 등교를 돕고 업무를 계획하느라 정신 없이 바쁘다. 아홉 살 둘째 아들은 오늘따라 학교 가기 싫다는 투정이 유난히 심하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일상. 여성이 단호한 말투로 아들을 달래며 현관문을 여는 순간 평화롭던 분위기는 돌변한다. 곳곳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쏟아지는 질문들. 집은 기자들로 포위된 지 오래다. 여성은 황급히 문을 닫고 밖을 몰래 훔쳐본다. 지금 집의 2층에는 하룻밤 사이 세 명의 여성을 강간해 재판을 기다리는 10대 큰 아들이 있다. 때마침 시끄러운 전화벨이 울리며 여성이 애써 꾸민 일상의 가면이 단숨에 벗겨진다.

19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연습실에서 펼쳐진 연극 ‘그의 어머니’의 첫 장면이다. 이날 국립극단은 다음 달 2~1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올리는 무대를 앞두고 일부 장면을 먼저 선보인 뒤 작품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리에는 범죄자의 어머니 ‘브렌다’ 역으로 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 김선영과 연출가 류주연이 함께 했다.

브렌다를 연기하는 일은 데뷔 30년차 배우에게도 쉽지 않았다. 김선영은 “공연이 2주 남았는데 내 입장에서는 2주 밖에 안 남았나 싶은 심경”이라며 웃었다. 그는 “잘 나갔던 엄마인데 이런 일을 맞닥뜨렸을 때 겪을 마음의 갈등이란 단순히 나열만 해도 몇 페이지일 것”이라며 “아들의 범죄를 비난하면서도 피어오르는 연민,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 반면 세상은 왜 이리 욕만 하느냐 싶은 억울함 같은 수많은 감정이 충돌하는데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하염없이 대본을 보고 또 보고 있는데 볼 때마다 내가 놓쳤던 감정들이 다시 떠올라 계속 새로 쓰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배우 김선영(오른쪽)이 19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연습실에서 연극 '그의 어머니' 연습 장면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립극단




배우 역시 딸을 둔 ‘잘 나가는 엄마’인데도 브렌다와 거리가 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연습을 시작하고 일주일쯤 뒤에 알았는데 이 여자가 너무 비호감인거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극본이 나쁜 주인공을 무대에 올려 다 함께 비난하자고 하는 것도 아닐 테니 결국 브렌다에 대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게 있다는데 이번 연습을 하면서 저는 그런 죄책감이 완벽하게 없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웃음). 아들에 하는 대사도 처음에는 ‘내가 증오의 끝을 보여주겠다’며 하늘을 찌르는 증오만 표현했죠. 근데 그러고 나니 연기를 한 우리 배우들조차 상처를 받아서 마음이 풀리지가 않는 거예요. 이게 맞는 건가. 다섯 줄 대사인데 그걸 해석하느라 그저께는 결국 오전 8시에 잠들었네요.”

작품은 배우가 오랜만에 서는 연극 무대라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김선영은 “극단도 운영하고 디렉팅도 하기에 연극을 놓은 적은 없었다”면서도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이어가면서 ‘공부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작품을 만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적인 분량으로 무대를 끌고 가야 하는데 좋은 공부가 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무대에서 꼭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이게 이 작품에는 있다. 꼭 많이들 보러 오셨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19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연습실에서 연출을 맡은 류주연(왼쪽)과 배우 김선영이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립극단


작품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류 연출과의 인연이다. 두 사람은 1999년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나 2007년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으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는 관계다. 류 연출은 작품에 대해 “예술이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지점까지 쫓아가서 그것을 파헤쳐 가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볼 때마다 새로운 지점들이 발견되는 다층적인 이야기로 내가 미처 찾지 못한 것도 관객들이 찾아낼 것 같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연출에 대해서는 “모든 장면은 집 안에서 이뤄지지만 바깥 소리 등을 통해 외부에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그 이야기가 꽁꽁 숨은 집안으로는 들어오지 않는 그런 심리적인 폐쇄성에 초점을 맞췄다”며 “집안에서 고조되는 인물들의 불편한 감정을 그려내면서도 너무 심각하지는 않게 균형을 맞추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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