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미국의 민감국가 및 기타지정국가 명단(SCL) 지정과 관련, "3월 7일에 우리나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통해 지정 사실을 파악했다"며 "이 문제를 확산시킬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SCL과 관련된 논란은 지난 10일 한 언론매체의 보도 이후 지속되고 있다.
조 장관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긴급 현안보고에 출석해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 에너지부(DOE) 내에도 소수 담당자만 인지하고 있는 명단이라 초기에는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며 "신흥과학기술 부상에 따라 기술지형이 변화하면서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조치(명단에 포함)"라고 설명했다. 또 "대외 비공개로 작성하기에 국가별 등재 여부, 해제 절차, 갱신 시기 등 공개하지 않으며 협의 절차도 없는 명단"이라며 “미국측 설명에 따르면 기술안보 측면에서 문제가 있어 취한 조치이며, 이 문제를 확산시킬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외교부는 우리나라가 SCL에 추가된 것과 관련해 "외교정책적 문제가 아니라 DOE 산하 연구소의 보안 문제가 원인으로 파악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0일(현지시간) DOE 장관과 만나 해당 사안을 협의했고, 이튿날부터 실무 협의가 개시됐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보안 문제가 SCL 지정까지 이어졌는지 미측에서 설명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2023~2024년 사이 DOE 산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의 직원이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한국으로 유출하려 한 사건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조 장관은 이날도 "미국은 특정한 사례를 언급하지 않았으며 INL은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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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외통위에서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01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우라늄 분리 실험을 한 사실이 2004년 드러나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뻔 했던 사건에도 민감국가 지정이 없었는데, 이번에 '보안문제' 때문에 지정됐다는 것은 다른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기웅 국민의힘 의원은 "기술보안상 어떤 문제인지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미측에 해결방안을 설명하고 SCL 제외를 요청했다는 것이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보안 문제라면 관련된 개개인이나 단체를 처벌하면 되는데 왜 동맹국을 SCL에 추가하겠느냐"며 "보안 위반이 SCL 지정을 촉발했을 수는 있지만 또 다른 배경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감국가 지정은 오로지 핵과 관련된 문제'라는 문구가 담긴 1990년대 미국 정부 문서도 소개했다. 이어 "과거에 우리나라가 핵개발로 인해 민감국가로 지정된 전력이 있고, 이후로도 여러 번 핵물질을 추출한 데다 2023년부터 대통령, 국방장관 등이 핵무장을 적극 주장했다"며 "이러한 상황에 보안문제까지 엮이면서 SCL에 포함됐다는 추정이 이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위 의원은 "보안 사고는 부분적 진실일 수 있고, 사안의 전체적인 함의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SCL은 (개인, 단체가 아닌)국가를 지정하도록 내부 규정이 돼 있고, 1980~1990년대 SCL 지정의 경우 원자력공동상설위 소관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논란이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내부의 이러한 논란이 미국측의 레버리지로 쓰일 가능성"을 제기했고, 조 장관은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동의했다.
한편 이날 외통위에 출석한 박성택 산업부 차관, 이창윤 과기부 차관은 원자력 수출, 과학기술연구 등의 분야에서 SCL과 관련해 현장에서 체감되는 분위기의 변화 등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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