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장 자리가 10개월째 공석인 가운데 신임 원장 임명을 둘러싼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악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신임 국악원장으로 문체부 고위공무원이 내정됐다는 소문에 국악계가 반발하자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직접 해명에 나선 것이 논란을 키웠다. 국악계는 “특정 학교 출신이 국악원장 자리를 독점해온 점이 더 문제”라고 했던 유 장관의 발언이 국악계를 분열시키려는 부적절한 처사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국악계 주요 인사들로 구성된 국악계 현안 비상대책협의회(이하 비대협)는 25일 서울 종로에서 ‘국립국악원 관치행정 반대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부가 신임 국악원 원장으로 고위 행정직 공무원을 임명하려는 계획을 철회하고 국악계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줄 것을 촉구했다. 이날 자리에는 12·13대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윤미용 비대협 대표를 비롯해 김해숙 18대 원장과 김영운 20대 원장, 변미혜·김희선·김명석 등 국악원 전임 연구실장 등 국악계 주요 인사 13명이 참석했다.
이날 비대협은 국악계 의견으로 크게 세 가지를 거론했다. 앞서 국악원 전·현직 예술감독들과 한국 음악·교육 관련 학회장들이 잇따라 성명을 발표했던 것처럼 “행정직공무원의 국립국악원장 임명을 반대하고 재공모할 것”이 첫 번째다. 현재 국립국악원장 임명이 유력시 되는 인물은 유병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장으로 알려졌다. 김혜정 판소리학회장은 “국악원에는 이미 행정직공무원이 파견되는 과장 및 단장 직책이 있다”며 “원장까지 행정직공무원이 된다면 원장부터 과장, 단장까지 모두 문체부 공무원들이 차지하게 되는 건데 그렇다면 국악원 본연의 미션은 누가 달성할 수 있을까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또 문체부가 추진하던 국립국악원의 조직 개편도 원점으로 되돌려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기를 요구했다. 앞서 문체부는 기획운영단과 국악연구실의 2개 국(局) 단위 조직으로 운영되던 국립국악원의 조직 개편을 추진해왔지만 국악계는 연구 기능 축소가 예상된다며 반발해왔다.
특히 비대협은 유 장관의 발언에 대해 “책임자의 편향된 인식에 근거한 사실 왜곡으로 국악계의 분열을 획책하는 악의적인 ‘갈라치기’ 행태를 중단하라”며 강하게 목소리를 냈다. 유 장관이 앞서 21일 국악원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언제까지 (국악인들) 자기들끼리만 계속할 것이냐”며 특정학교 출신이 독점해온 문제를 지적한 발언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김영운 전 국립국악원장은 “국악계에서 국악인만이 원장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단 인사혁신처가 공모하며 제시한 요건을 보면 국악 전문가 중에서도 역량이 뛰어난 자만이 맡을 수 있는 자리가 국악원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악의 역사나 장르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전문 국악인보다 행정직공무원이 높을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며 “예술인 출신의 원장이 행정의 효율성 면에서 뒤질 수는 있지만 문화예술이 행정 효율성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비대협은 25년간 국악고·서울대 출신이 국립국악원장을 차지하고 있다는 ‘독점’ 논란에 대해서도 반발했다. 김 전 원장은 인사혁신처가 주도했던 공모 절차와 인사 검증 절차가 공정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특히 국악고는 국악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서 정부 예산으로 발족한 교육기관이고 이곳 출신들이 양질의 전문교육을 받았기에 풍부한 역량을 축적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논란에 대해서도 “서울대 국악과는 1959년 첫 입학생을 받았고 이후 한양대·이화여대는 1972년·1974년에 각각 국악과가 개설된다”며 “국악원장의 연령을 고려해 볼 때 다른 대학에서 졸업생을 배출해 경쟁할 여건이 갖춰진 것은 2015년 이후로 그리 길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 전 원장은 “차세대 국악계 리더라고 하면 부산·남원·진도에 있는 국악원 지방 분원장들이라고 할 텐데 이들 세 명 중 서울대 출신은 1명 밖에 없다”며 “우려하는 특정 학맥 편중 현상은 역량 있는 사람이 늘어나면 자연히 해소될 일”이라고 덧붙였다.
비대협은 유 장관의 “국악인 80%가 반대하면 따르겠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여론조사를 어떻게 진행할 건지, 모든 참가자들이 논점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합리적인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미용 비대협 대표는 “장관이 (여론조사를 실시할) 의지가 있다면 국악계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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