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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특수와 석유戰…조각난 기억을 잇다

◆김아영 '플롯, 블롭, 플롭'展

아버지가 지은 사우디 주택서

석유 자본 둘러싼 걸프전까지

현실·상상 담아낸 영상 선보여

"나와 가족이야기 공개는 처음"

김아영 작가가 서울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전 '플롯, 블롭, 플롭'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아영 작가가 서울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전 '플롯, 블롭, 플롭'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가장 핫한 작가를 한 사람만 꼽으라면 단연 김아영이다. 3월 세계적인 미디어 예술상인 ‘LG 구겐하임 어워드’의 한국인 첫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그를 조명하는 전시가 줄줄이 열린다. 현재 일본 모리미술관 그룹전과 독일 베를린 소재 함부르거 반호프에서 개인전을 진행 중이며, 5월에는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기획전, 11월에는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PS1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쉼 없이 달리고 있는 그의 신작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건 한국인이기에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행운이다.

김아영의 신작 ‘알 마터 플롯 1991’이 공개되는 개인전 ‘플롯, 블롭, 플롭(Plot, Blop, Plop)’이 21일부터 서울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고 있다. ‘구획, 방울, 퐁당’이라는 뜻을 가진 전시명은 소리 낼 때 입안에서 방울이 터지는 듯한 리듬감을 주는 유희적 느낌까지 고려해 작가가 직접 정했다.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플롯이라는 단어에 오래 심취해 있었는데 이번 작업을 진행하며 이 단어에 서사를 구성한다는 뜻 외에 영토·경제 관련 공간을 구획하고 도면을 그린다는 의미, 더 나아가 음모나 작전을 획책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렇다면 이번 작업이야 말로 플롯에 관한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관람객이 서울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공개 중인 김아영의 신작 '알 마터 플롯 1991'을 감상하고 있다. 전시 공간 바닥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건설된 '알 마터 주택단지'의 도면이 시각화돼 있고 공중에는 폭탄과 같은 전쟁의 심볼들이 매달려 관객들의 시야를 방해하는 동시에 작품 서사에 대한 이해를 더한다. 사진 제공=에르메스재단




그의 설명처럼 28분 분량의 영상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한 장소, 한국의 한양건설이 건설했던 ‘알 마터 주택단지’의 도면이 그려가는 공간의 구획(플롯)에서 출발해 석유를 둘러싼 이라크·쿠웨이트 전쟁과 걸프전이라는 작전(플롯)에 도달하는 다층적인 서사(플롯)를 담고 있다. 중심 축이 당시 ‘중동 특수’에 올라탔던 건설사의 부장을 지낸 작가의 아버지이고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화자가 작가 자신인 점은 특히 흥미롭다. 작가는 “지난 17년 동안의 작업에서 내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작업에서 ‘내’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 일부러 뒤로 빠져 있기를 선호해 왔는데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꺼낸다는 것은 나로서도 큰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가상 도시를 질주하는 여성 라이더들을 주인공으로 미래적 세계관을 그렸던 그의 대표작 ‘딜리버리 댄서’ 연작을 먼저 접한 관객들에게 현실에 깊이 뿌리내린 이번 작품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매체를 혼합해 새로운 서사를 구축하는 김아영의 주특기는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됐다. 작가는 가족 사진첩에서 꺼낸 아버지의 사진을 콜라주하고 신문 기사 등 각종 문서 자료를 토대로 당시의 풍경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뒤 3D 건축 애니메이션으로 아파트 내부 공간을 구현한다. 또 현지 주민에 대한 실사 인터뷰와 어린 시절 작가가 품었던 중동에 대한 상상을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시각화한 이미지, 음악과 소리, 텍스트와 조명에 이르는 모든 매체를 적극적으로 섞어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밀도 높은 스토리텔링을 완성한다.

김아영 작가의 신작 '알 마터 플롯 1991'의 한 장면. 사진 제공=에르메스재단


김아영 작가의 신작 '알 마터 플롯 1991'의 한 장면. 사진 제공=에르메스재단


‘블롭(방울)’이 상징하는 석유는 김아영이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에서 선보였던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 연작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번 작품은 ‘제페트’의 연장선이자 사운드 퍼포먼스였던 작품을 시각화한 작업이기도 하다. 10년 만의 시각화는 에르메스 재단의 발견 덕분이다. 안소연 아뜰리에 에르메스 디렉터는 “작가의 초기 작업을 흥미롭게 지켜봤고 특히 사운드로만 존재한 ‘제페트’ 연작은 미완성으로 남은 영역이 많아 다시 살려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가 역시 “당시 수집했던 풍부한 이야기들을 시각화하지 않으면 아쉽겠다는 생각을 줄곧 했는데 마침내 기회가 온 셈”이라며 “생성형 AI, 라이다스캔 등 신기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6월 1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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