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인근 5개 시군으로 번지면서 산불 영향 구역을 추산하지 못할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순간 최대 초속 20m 강풍을 탄 ‘괴물 산불’이 경상도 지역을 휩쓸며 불길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는 탓이다. 경남 산청에서 시작된 산불은 하동과 지리산국립공원 경계를 넘어 안동 하회마을 앞 야산까지 다다랐다.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의 대형 산불은 발생한 지 닷새가 지났음에도 바람의 영향으로 불씨가 되살아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전날 98%를 기록했던 진화율이 78%로 뒷걸음쳤다.
26일 산림청은 의성군 산림현장통합지휘본부 앞에서 브리핑을 열고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전날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최대 풍속 초속 27m의 강한 바람이 불면서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4개 시군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며 “산불 영향 구역을 추산하기 위해 이 인근을 항공기로 정찰했으나 영상 자료가 많아 분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산림 당국은 이날 인구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산림청 헬기 20대 등 87대의 헬기를 순차적으로 진화에 투입했고 4919명의 진화 인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산불 현장에 초속 3~4m 이상의 강한 바람이 불며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중 가장 피해가 큰 곳은 의성·안동으로 이날 기준 3만 7000㏊의 산림이 거센 산불 피해 영향권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불길은 이날 오후 9시 직선거리 기준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 앞 4㎞, 병산서원 앞 2㎞ 지점까지 접근했다.
소방 당국과 하회마을 주민들이 소방수를 30분 간격으로 뿌리고 있는 데다 하회마을 인근 낙동강이 방화선 역할을 하며 버티고 있다. 경북 안동시는 이날 오후 늦게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주변 주민들에게 재난문자를 통해 대피하라고 안내했다. 법무부도 안동교도소에 수용 중인 800여 명 가운데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환자와 여성 수용자부터 우선적으로 대구지방교정청 산하 교정기관으로 이송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남 산청·하동에서 발생한 산불은 닷새 만에 지리산국립공원을 뚫었다. 이날 정오 산불은 산청 시천면 구곡산 일대 지리산국립공원 경계 인근까지 번졌고 소방 당국은 오전 내내 연무로 진화 헬기를 띄우지 못해 조기 확산 진압에 실패했다. 산림 피해 지역은 1702㏊로 전날(1572㏊)보다 130㏊가 늘며 전체 진화율은 하루 만에 90%에서 오후 6시 기준 77%까지 떨어졌다.
같은 시간 울주군 온양읍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경남 양산까지 번지며 진화율이 92%에서 78%로 낮아졌다. 불길은 전체 18.8㎞ 화선에서 14.8㎞를 잡아 4.0㎞를 남겨두고 있다. 산불 영향 구역은 494㏊에서 685㏊로 크게 늘었다. 특히 오전 11시부터는 울주군 온양읍 대운산에 머물던 불길이 양산 지역까지 넘어섰다. 행정구역은 달라졌지만 대운산 줄기를 따라 이어진 불길은 계속 확산과 진화를 반복하고 있다. 반면 전날 발생한 언양 지역 산불은 이날 오전에 초진돼 현재 잔불 정리 중이다.
경남 산청, 경북 의성, 울산 울주 등 영남권을 휩쓸고 있는 대형 산불로 국가유산(문화재)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국가 지정 보물 2건이 화마에 전소됐고 다른 보물 10건은 분산해서 이동 중이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보물 2건이 전소됐고 명승 1건, 천연기념물 1건, 시도 지정 4건 등 모두 8건이 피해를 봤다. 보물로 지정된 경북 의성 고운사 연수전과 가운루는 전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 지정 명승인 강원도 정선 백운산 칠족령과 천연기념물 울주 목도 상록수림은 각각 5000㎡·1000㎡가 소실됐다. 경북 유형문화유산인 청송 만세루도 전날 전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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