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자동차가 실적 부진과 혼다와의 경영통합 실패 등의 이유로 최근 사장 교체를 단행한 뒤 신(新) 체제에서 임원 수를 대폭 줄여 의사결정 과정을 효율화하기로 했다. 개발 기간을 단축해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한편, 신차 출시도 대폭 늘린다는 방침이다.
27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4월 1일 공식 취임하는 이반 에스피노사 신임 사장(현 상품기획 최고책임자)은 전날 새 체제에서 추진할 글로벌 전략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격변하는 시장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속도"라며 의사결정 과정을 대폭 간소화하고, 개발 시간 역시 단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닛산은 지난 11일 이사회에서 우치다 마코토 사장을 이달 31일부로 퇴임시키고, 신차 전략을 총괄하는 에스피노사 최고책임자를 후임으로 하는 안을 의결했다. 46세인 그는 멕시코 출신으로 2003년 멕시코 닛산에 입사해 2018년부터 글로벌 상품 기획을 맡았다.
에스피노사 체제에서는 사외이사와 르노 측 이사를 제외한 임원 수를 80% 감축해 의사결정을 신속화한다. 집행임원을 폐지해 사장을 포함해 의사 집행에 관련된 임원 수를 현 55명에서 12명으로 대폭 줄인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업계 1위 도요타자동차의 집행 임원 수는 9명으로 닛산 안팎에서는 "사공이 너무 많아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에스피노사 내정자는 "집행체제의 재검토로 의사결정이 빨라질 것"이라며 "공통의 방향성을 갖고 대처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신차 출시도 가속화해 경영 정상화를 꾀한다. 2025~2028 회계연도에 최소 13개의 신형차를 출시·판매한다. 주력인 미국 시장에서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V)와 하이브리드차(HV)를 발매한다. 미국에서 인기가 많은 HV를 적시에 투입하지 못한 것이 경영 부진의 주된 원인이라는 판단에서다. 전기차(EV)에서는 주행거리를 늘린 신형 '리프'를 일본·미국·유럽에서 판매하고,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의 미국 시장 투입도 진행한다. 에스피노사 책임자는 "신차 개발 기간이 길어지면서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며 현재 약 4년 7개월(55개월) 수준인 개발 기간을 앞으로 2년(24개월) 정도 단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경우 개발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이 2년 7개월(31개월)로 크게 줄어든다.
타 업계와의 협력도 시야에 넣는다. 닛산은 2월 혼다와의 경영통합 협상이 결렬돼 차세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개발 등과 관련한 새로운 제휴선 모색이 시급한 상황이다. 에스피노사 내정자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을 향상시키는) SDV는 자동차 회사에 없는 기술도 요구된다"며 다른 회사들과의 협력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닛산의 경영 체제 쇄신이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영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이사회 구성원 중 우치다 마코토 사장 등 닛산 측 2명은 곧 6월 주주총회에서 물러나 교체될 예정이지만, 8명의 사외이사는 전원 유임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일부 투자자들도 이를 문제삼고 있다. 기업지배구조에 정통한 우시지마 신 변호사는 "닛산의 실적 부진은 우치다 사장뿐만 아니라 이사회에도 책임이 있다"며 "사외이사가 한 명도 사임하지 않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우치다 사장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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