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기자의 눈]실추된 사법부 권위

이진석 정치부 기자


사법부가 ‘양치기 소년’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굵직한 정치 사건의 판결이 나오는 날이면 담당 판사는 어김없이 거짓말쟁이로 몰려 여론의 법정에 선다. 제1야당 수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는 ‘우리법연구회 카르텔’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대통령에 대한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린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했다. 사법부의 권위는 국민의 신뢰에서 비롯되지만 이제는 누구도 판결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물론 이 같은 불신은 사법부가 자초한 면도 있다. 최근 3년간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건 가운데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힌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 바늘 구멍만 한 확률을 뚫고 ‘사법 족쇄’를 풀었을 때 국민 10명 중 4명은 “법원 판단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더구나 공직선거법이 정한 ‘6·3·3(1심 6개월, 2·3심 3개월 내 선고)’ 규정에 따라 이 대표 사건은 2023년 9월 전에 확정 판결이 나왔어야 했다. 피의자의 신분에 따라 판결 속도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판결의 무게도 가벼워졌다.

여기에는 정치권도 일조했다. 여야 모두 “결과를 맞춰오라”는 식의 사법부 압박을 서슴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법조인 출신 의원들은 이 대표의 선거법 2심 무죄 판결 직후 “대법원이 ‘파기자판’하라”고 압박했다. 조기 대선이 있을 수 있으니 고등법원으로 보낼 것 없이 대법원이 직접 유죄 판결을 내리라는 주문이다. 사법 역사상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고 직접 유죄 판단을 내린 전례는 없다.

반대로 민주당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늦어지자 ‘보이지 않는 손’ 운운하며 헌법재판관 임기 연장법까지 꺼냈다. 정당이 사법부에 심증을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입맛에 맞는 판결을 유도하기 위해 새 규칙까지 만들겠다는 발상은 경악스럽다.



판사 출신의 한 의원은 “사법이 희화화되고 있다”고 자조했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던 의회의 불문율은 이미 무너졌다. 정치의 사법화를 조장했던 여야가 앞다퉈 사법부를 흔들면서 부화뇌동해왔던 사법부의 권위도 덩달아 실추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