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만장일치로 파면한 핵심 근거는 ‘권한 남용으로 인한 민주주의 원칙 훼손’이다. 헌재는 정치적 갈등을 군경을 동원해 해결하려 한 이른바 ‘경고성 계엄’ 시도부터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대통령의 모든 권한 행사는 헌법 질서와 법치주의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함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대로 된 법률가라면 탄핵 인용에 반대 의견을 쓰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사건이었다”고 했다.
헌재는 먼저 윤 전 대통령이 주장한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했다. 계엄 선포가 정당화되려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 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 및 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 발생해야 한다. 그러나 야당의 탄핵소추 추진, 입법권 행사, 예산 삭감 시도 등은 이러한 계엄 선포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정치적 대립은 정치적·제도적·사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병력을 동원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주장한 정치적 갈등 상황들은 정상적인 국정 운영 범위 내의 문제로 계엄을 선포할 만한 ‘국가비상사태’로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야당이 발의한 법률안들은 재의 요구나 공포 보류로 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였고 연이은 탄핵 소추가 문제로 제기됐지만 이 역시 계엄의 요건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2024년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았다고 해도 헌법 제54조에 따라 전년도 예산이 준용되기 때문에 국가 재정 운영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짚었다.
계엄 선포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성도 심각한 문제로 부각했다. 문 대행은 “국무회의 심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의 부서, 시행 일시 공고, 국회 통고 등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필수 절차를 사실상 모두 무시했다”며 “이는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경시하고 대통령 개인의 판단만으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한 권한 남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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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선포 이후의 조치들도 마찬가지였다. 헌재는 포고령을 통한 국회와 정당 활동 금지가 헌법상 권력 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국회의 고유 기능을 무력화했다고 판단했다. 문 대행은 “이러한 조치는 국회에 계엄해제요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 정당제도를 규정한 헌법 조항과도 배치된다”고 언급했다.
전공의들에 대한 즉시 복귀 명령을 담은 포고령 역시 중대한 기본권 침해라고 판시했다. 의사들의 단체행동권과 직업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한 것으로 법률이 아닌 포고령으로 복귀를 명령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헌재는 정당한 계엄 사유가 없는 상황에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결국 대통령의 권한 남용에 해당한다는 점을 짚었다.
헌재는 특히 계엄 당시 군경 동원을 통한 국회 봉쇄에 대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윤 전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국회 군대 투입을 지시하고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에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명령한 것과 관련해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과 불체포특권을 침해했다고 명시했다. 문 대행은 “(국회 봉쇄로) 일부 국회의원들은 담장을 넘어가거나 아예 입장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진 정치인들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에 대해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중대한 권한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퇴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 대법원장 및 대법관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는 사법부 독립성을 위협하고 삼권분립 원칙을 위반한 중대한 헌법적 가치 침해라고 지적했다.
영장 없이 군 병력을 동원해 선관위 전산 시스템을 점검한 것 역시 선관위의 독립성과 영장주의를 훼손하는 행위로 법치주의와 민주적 선거 제도에 대한 침해라고 헌재는 판단했다. 헌재는 “중앙선관위 청사에 투입된 병력이 당직자들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전산 시스템을 촬영한 행위는 영장주의를 위반한 것이며 이 역시 대통령의 권한 남용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12·3 계엄으로 촉발된 일련의 권한 남용 행위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권력분립, 법치주의, 기본권 보장 등을 총체적으로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문 대행은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여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헌재의 결정은 ‘1987년 이전으로 되돌아가 총구를 국민에게 겨누며 권좌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분명한 이정표를 우리 헌정사에 새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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