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가수가 높은 게 좋겠죠?"
올 초 출산 휴가에 들어간 후배에게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아기 예방접종을 맞추러 갔다가 폐렴구균 백신 '13가'와 '15가' 중 선택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요. 백신은 약하게 만든 병원체 등을 주입해 병을 막아낼 수 있는 항체를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방법입니다. 백신에 붙는 숫자는 예방할 수 있는 항원의 개수를 뜻하죠. 예를 들어 국가필수예방접종(NIP)에 포함돼 있는 폐렴구균 단백접합 백신 중 13가인 '프리베나13'은 13종, 15가인 '박스뉴반스’는 15종의 폐렴구균 혈청형으로 인해 생기는 침습적 질환 및 폐렴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한국MSD는 기존 '프리베나13'에 포함된 13개 혈청형 외에 최근 전 세계에서 주요 폐렴구균 질환을 유발하는 혈청형으로 지목되는 '22F'와 '33F' 2개 혈청형을 추가한 백신을 개발해 2023년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지 1개월 여만에 NIP 도입이 전격 결정됐고 작년 4월부터 무료 접종이 시작됐습니다. 침습성 폐렴구균 질환은 1세 미만 소아에서 발병률이 높은데, 지금까지 밝혀진 균 종류만 90종이 넘거든요. 특히 폐렴구균성 뇌수막염의 경우 3분의 2가량이 생후 첫 해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첫돌이 되기 전 충분한 면역원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얼핏 보기엔 가수가 높을수록 예방 효과가 뛰어나다고 생각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가수가 높을수록 일종의 운반단백질(Carrier Protein)이 늘어나는데, 그 과정에서 자칫 공통 혈청형에 대한 농도가 떨어질 수도 있거든요. 전문가들이 폐렴구균 백신 선택 기준으로 '면역원성'을 강조하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예방 범위가 넓으면서도 높은 면역원성을 갖췄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죠. 한국MSD는 박스뉴반스가 기존 13가 백신에 포함된 공통 혈청형은 물론 15가지 혈청형 모두에 대해 높은 면역원성과 안전성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폐렴구균 백신을 선택할 때 또 한가지 중요한 기준은 '교차접종'입니다. 폐렴구균 백신은 생후 2·4·6개월의 3회 기초 접종과 생후 12~15개월의 1회 추가 접종까지 총 4회 접종이 필요한데, 중간에 다른 백신으로 갈아타는 게 불가능한 경우도 있거든요. 중간에 다른 백신으로 바꿨을 때 폐렴구균성 질환의 예방 효과가 유지될지 여부는 각 백신 제조사가 확보한 임상 데이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현재 정부 지원을 받는 13가와 15가 백신은 교차접종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작년 10월에 식약처 허가를 받은 20가 폐렴구균 단백접합 백신 '프리베나20'의 경우 15가와 교차접종 허용 여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요. 따라서 15가 백신으로 접종스케줄을 시작했다면 중간에 20가 백신으로 갈아타지 못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병원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가장 많은 폐렴구균 혈청형을 보유한 백신인 프리베나20이 연내 NIP에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접한 후 교차접종을 위해 13가 백신을 선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해요. 우리 아이에게 어떤 백신을 맞출지 고민된다면 단순히 숫자만 비교하기 보단 면역원성, 교차접종 가능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상의해서 결정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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