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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끝에 담은 '바람'…반세기 만에 펼치다

■간송미술관 봄전시 '선우풍월'

부채 위 글·그림이 전해주는 풍류

당대 예술가들의 인적교류도 흥미

엄선된 54건 중 23건은 최초 공개

중국 문인 섭지선이 홍현주에게 보낸 ‘청죽’. 사진 제공=간송미술관




김태석이 전형필에게 선물한 ‘조일산당’. 사진 제공=간송미술관


쥘부채(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부채)의 선면(扇面·거죽) 위로 바람에 나부끼는 푸른 댓잎들이 펼쳐진다. 청량함이 가득한 이 부채는 19세기 청나라 문인으로 조선 문인들과 교류가 깊었던 섭지선(1779~1863)이 정조의 부마이자 당대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해거재 홍현주(1793~1865)에게 보낸 선물이다. 대나무 숲의 서늘한 바람을 느끼며 여름날 무더위를 이겨내길 바랐던 우정이 부채 속 그림 ‘청죽(靑竹)’에 담겼다.

대한민국 1호 국새와 중화민국 초대 총통 위안스카이의 옥새에 글씨를 새긴 서예가 김태석(1874~1951)도 1934년 여름날 간송 전형필(1906~1962)에게 청나라 문인 왕사진의 한시를 정갈하게 써내려간 부채를 선물한다. 간송미술관은 미술관이 보유한 김태석의 인장 32과의 제작 시기가 대부분 1936년이었던 점에서 이 부채를 주고 받은 때가 두 사람이 교유를 공식적으로 시작한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

일 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만 문이 열리는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의 올해 봄 전시는 부채에 그려진 글과 그림, ‘선면 서화’를 집중 조명한다. 9일부터 열리는 특별전 ‘선우풍월 : 부채, 바람과 달을 함께 나누는 벗’에서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총 133점의 선면 서화 중 엄선된 54건(55점)이 공개된다. 이중 23건은 대중에게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와 단원 김홍도의 부채 그림부터 오세창, 안중식, 조석진 등 근대 서화 거장들의 선면 서화도 만나볼 기회다.

‘하선동력(夏扇冬歷·여름에는 부채를 선물해 무더위를 쫓고 겨울에는 달력을 선물해 새해를 계획한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채는 우리 선조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조선의 문인들은 아름다운 시와 산수, 다양한 동식물을 부채에 그려넣어 마음이 맞는 벗에게 선물하기를 즐겼다. 품위 있는 글과 그림을 담은 부채는 소유자의 권위를 드러내는 소품으로 중히 여겨졌고 훗날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까지 인정받았다. 서로 나눈 부채를 통해 당대 예술가들의 교우와 숨겨진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은 특히 흥미롭다. 전시를 기획한 김영욱 팀장은 “부채 면을 자세히 보면 반짝이는 운모가루나 금분 혹은 금박이 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일반 종이보다 가치가 높은 냉금지(冷金紙·장식 종이)인 것을 알 수 있다”며 “선면 서화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선물의 의미가 크다. 기왕이면 좋은 종이 위에 쓰고 그려 선물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송미술관 전시실 전경 /자료제공=간송미술관


전시는 시대순으로 구분돼 2층에서 1층으로 이어진다. 2층에는 조선과 청대의 선면 서화 총 24건(25점)이 소개된다. 영지버섯과 난초꽃을 각각 두 대씩 좌우로 배치한 추사의 부채 그림 ‘지란병분’과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부채 그림인 단원의 ‘기려원유’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조선의 추사학파와 인연을 맺은 청나라 문사들의 그림과 글씨를 보여주는 작품들도 공개되는데 7건(8점)이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선보인다.

1층에는 근대 선면 서화 29건이 진열된다. 간송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인 단체인 서화협회를 후원하고 협회 회원들의 작품을 꾸준히 구매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 성재 김태석과 향당 백윤문 등 당대 서화가들이 간송에게 선물한 부채 4건도 공개된다. 이 작품들은 간송이 당대 문화계 인사들과 맺었던 깊은 인적 교류를 보여주는 자료인 동시에 각 서화가의 당시 경향도 엿볼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부채 그림 ‘지란병문’. 사진 제공=간송미술관


이번 전시는 반세기 만에 만나는 간송미술관의 부채 전시라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1977년 5월 간송미술관은 부채를 중심으로 ‘선면’ 전시를 열었지만 당시에는 일부만 공개됐고 흑백 도판을 사용하는 등 정보가 제한돼 아쉬움이 남았다. 48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 소장한 선면 서화의 전모와 내력을 밝혀 당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풍부한 생각과 감정을 상세히 드러내도록 기획됐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전시에 대해 “그림과 글씨를 통한 선비들의 우정과 감정, 당대의 국제적인 교류들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부채에 담긴 선조들의 풍부한 문학적 언어와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다가오는 여름 시원한 바람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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