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겠다며 비자 요건을 완화하는데도 학계의 반응이 회의적인 것은 국내 연구와 창업 환경이 외국인 인재에게 매우 척박하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최근 도입한 ‘톱티어 비자’는 높은 소득 기준, 현실과 맞지 않는 조건으로 실효성이 떨어지고 국책 연구나 창업 지원에서도 행정적 지원 부족으로 인해 실질적인 성과가 미미할 것으로 우려된다.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쳐 보다 정교하고 현실성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7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법무부가 최근 발표한 ‘톱티어 비자’의 자격 기준을 실제로 충족할 수 있는 외국인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톱티어 비자는 세계 100위권 이내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외국인이 국민총소득(GNI) 3배(약 1억 5000만 원) 이상의 연 소득을 올릴 경우 즉시 거주 자격(F-2)을 부여하는 제도다. 그러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 결과 2023년 기준 국내에 체류하는 이공계·의약계 외국인 박사 중 연 소득 1억 원 초과자는 0.4%, 5000만 원 이상인 경우도 7.8%에 그쳤다. 최근 환율 상승과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겹쳐 기준 충족자는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법무부는 이 비자를 통해 수백 명의 해외 고급 인력을 유치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지윤 명지대 이민·다문화학 교수는 “그 정도의 조건을 충족할 인재라면 이미 한국이 아닌 더 좋은 조건을 가진 국가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 국내로 유입 가능한 인재는 극소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석박사 등 학위를 취득한 외국인들도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현실부터 우선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외국인 전용 연구·산학 인턴십 플랫폼이나 취업 정보 제공 시스템이 사실상 전무하고 정부나 공공기관 일자리 대부분이 정규직 내국인 중심으로만 운영돼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한다. 한 외국인 연구자는 “국방·국토·환경 등 전문 분야의 일자리는 정부 기관에 집중돼 있는데 외국인으로서는 진입 자체가 매우 어렵다”고 토로했다.
국내 거주 외국인 인재 관리 체계가 미흡한 상태에서 비자 정책을 확대하면 부작용만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정부가 지역 경제 활성화 명목으로 도입한 ‘지역특화형 강력비자’가 대표적 사례다. 이 비자는 지방에서 5년 이상 거주한 유학생에게 가족 초청권을 주지만 현실적으로 상당수 유학생들은 비자 발급 후 곧장 가족과 함께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민정책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비자 발급 자체에만 초점을 맞출 뿐 실질적인 정착 지원인 한국어 교육이나 자녀 학교 배정과 같은 기본 인프라는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외국인 인재가 한국에 정착하고 싶을 만큼 연구와 창업 생태계의 매력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무부에 따르면 외국인 창업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기술창업비자(D-8-4)’와 ‘스타트업 특별비자(D-8-4S)’로 지난해 말까지 창업한 외국인은 총 174명으로, 전체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의 약 0.7%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87%가 수도권에 쏠려 있다. 해외 스타트업 유치를 위한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 역시 참여 팀이 2020년 55개에서 올해 40개로 줄었고 현재 사업자 등록을 유지한 팀은 17개에 그쳤다.
정 교수는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 외국인 연구자들의 체류 구조는 대부분 임시 체류에 머물러 있고 중장기 정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비자를 계속 새로 만들고 요건을 낮추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실제로 한국에 머물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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