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대 중국인 고교생들이 한국 공군 전투기를 무단으로 촬영하다 적발됐으나 중국 정부와의 연관성을 입증하더라도 '입법 공백'으로 간첩죄 기소는 어려울 전망이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 등 수사당국은 10대 후반의 중국인 2명을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군사기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이들은 관광비자로 입국해 미 군사시설과 주요 국제공항 부근을 돌아다니며 DSLR 카메라로 수천 장의 사진을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이 중 한 명은 부친이 공안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설령 중국 정부의 지시를 받고 군사상 정보 수집 목적으로 촬영했다고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하긴 어렵다. 간첩죄를 규정한 형법 98조 1항은 '적국을 위해 간첩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한다. 여기서 '적국'은 북한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그 외 다른 국가를 위해 간첩 활동을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수사 당국이 두 사람에게 군사기지법을 적용한 것도 이 같은 입법 공백 때문으로 풀이된다. 군사기지법에 따라 군사기지·군사시설을 무단 촬영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국내 안보 시설을 촬영하다 검거되는 일이 연달아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가정보원 건물을, 지난 1월에는 제주국제공항을 각각 드론으로 촬영한 중국인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 역시 부정한 의도가 드러나더라도 북한과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현행법상 간첩죄로 처벌하긴 어렵다.
수사 당국은 이 같은 범죄들을 군사기밀보호법, 군사기지법 혐의 등을 적용해 기소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간첩죄보다는 법정형이 낮아 억제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7월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영국 방산업체 한국지사장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국내 방산업체 기술본부장 B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B씨는 2019~2020년 육군 준위로부터 감시·경계 전력 사업과 관련한 군사기밀 문건을 받아 A씨 측에 유출한 혐의, A씨는 이를 수령해 사내에 누설한 혐의로 기소됐다. 외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내 군사 기밀을 유출한 범죄이지만 간첩죄 처벌 범위에 들어가지 않아 군사기밀보호법만 적용됐다.
수사 당국은 2018년 해외에서 활동하는 정보관 명단을 5년간 일본 등 외국에 팔아넘긴 전직 군 간부들을 적발하기도 했지만 징역 4년에 그쳤다. 이 역시 군형법상 간첩죄 처벌 대상이 아니어서 형량이 낮은 '일반이적죄'가 적용됐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들 사건에 대해 "외국 등에 대한 간첩죄의 불비(不備·갖춰져 있지 않음)로 군사기밀보호법 등으로 기소해서 처벌한 사안"이라며 "(간첩죄 처벌 대상이 '외국'을 포함한다면) 간첩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큰 사례들"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처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첩죄의 '적국'을 '외국 또는 외국 단체'로도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됐지만, 지난해 11월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관련 형법 개정안이 의결된 이후 별다른 논의의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 과정에서 이 형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했다고 주장하며 12·3 계엄 선포의 배경의 하나로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헌재는 민주당이 반대했다고 보기 어렵고 여러 개정안을 반영한 대안을 제안해 심사하는 단계에 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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