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키 크는 주사’로 불리는 성장호르몬제가 대중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관련 의약품 매출도 급증하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0.75명에 불과하지만, 자녀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성장호르몬제제 시장은 연평균 약 31% 성장해 2023년 기준 약 4445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동아에스티(170900)의 ‘그로트로핀’은 지난해 1189억 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25.3% 증가했다. 그로트로핀의 매출은 2020년 325억 원 수준이었지만 연평균 38.3% 증가해 지난해 1000억 원을 돌파했다. 회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2년 9.7%에서 2023년 14.3%, 2024년 17.0%까지 높아졌다. 국내 성장호르몬제제 매출 1위 제품인 LG화학(051910)의 ‘유트로핀’ 역시 매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개별 제품 매출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연간 1500억~1800억 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제미글로, 유트로핀, 유셉트 등 주요 제품 시장 선도 지위 강화로 안정적 매출 창출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의약품 시장조사업체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국내 성장호르몬 시장의 점유율은 LG화학이 39.9%, 동아에스티가 27.8%를 차지해 양분하고 있다. 화이자의 ‘지노트로핀’이 14.7%, 머크의 ‘싸이젠’이 12.7%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화이자는 2023년 매일 맞는 기존 성장호르몬제제 대신 주 1회만 맞는 ‘엔젤라’를 출시했지만 1년여 만인 올 1월 제품을 철수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 1회 제형은 주사 바늘이 상대적으로 굵어 아이들이 통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아서 철수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성장호르몬제와 함께 성조숙증 치료제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성장 클리닉에서 성조숙증 주사와 성장호르몬 주사를 동시에 맞히는 일명 ‘하이브리드 키 성장 치료’가 인기를 끌고 있어서다. 성조숙증은 키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알려져있다. 국내 성조숙증 치료 시장은 최근 5년 새 1100억 원대에서 1800억 원대로 성장한 것으로 추산된다. 성조숙증 시장은 대웅제약(069620) ‘루피어’와 다케다 ‘루프린’, 입센 ‘디페렐린’, 아스트라제네카 ‘졸라덱스’ 등이 주도하고 있다. 루피어와 루프린이 각각 연간 300억 원대의 매출로 시장을 양분하고 있으며, 디페렐린은 250억 원 수준으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다만 성장호르몬제와 성조숙증 치료제는 대부분 비급여로 연간 치료비가 1000만~1500만 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다. 건강보험을 적용 받으려면 키가 또래에 비해 하위 3% 이내이거나 성장호르몬 비정상적으로 분비 등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의 키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보험 대상이 아닌데도 비급여로 처방을 원하는 부모들이 많다보니 오남용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성장 관련 시장의 과열을 막고자 과대광고 행위를 지속적으로 단속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는 성조숙증 급여 기준을 강화하는 등 관리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반에서 키 작은 순서대로 5명 정도가 주사를 맞았지만 요즘에는 10명까지 맞는 경우가 흔하다”며 “자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성장호르몬제와 성조숙증 치료제 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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