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서태후’에 비유하는 만평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서태후는 청나라의 패권이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혀 외세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의화단운동을 비호했다. 결국 급변하는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제국주의의 붕괴를 가속화한 인물로 기록됐다. 당시 청나라 군대와 의화단은 서양 8개국 연합군에 의해 전멸됐고 베이징의정서와 통상항해조약 개정을 거친 청나라는 1912년 신해혁명을 계기로 300여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관세를 무기로 휘두르며 제조업 부흥을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100여년 전 중국이 겪었던 패배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글로벌 패권과 미국 산업이 가진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고립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행태는 서태후의 오만함과 닮아 있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아시아를 호령하던 청나라가 허무하게 몰락했듯 미국의 패권 역시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며 미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트럼프가 되찾고자 하는 세계 제조업 중심지 지위는 이미 중국의 방대한 내수시장과 정부의 강력한 육성 정책에 힘입어 이동한 지 오래다. 딥시크와 화웨이, 비야디(BYD) 등 혁신 기업들을 통해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첨단 기술 산업에서도 중국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패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그간 미국이 지켜오던 다자주의를 포기하고 우선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압박해 더 나은 무역 조건을 내놓으라 닦달하면서 국제 질서의 불안은 가중되는 모양새다. 글로벌 자본시장은 이미 ‘셀아메리카’ 전략에 앞장서고 있다. 고율 관세가 쏘아 올린 공으로 글로벌 공급망 혼란과 경제 기반 약화가 예상되면서 자본의 탈(脫)미국화가 본격화한 것이다. 자고 나면 말을 바꾸며 무역 상대국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행태도 미국 시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추락시키고 있다. 트럼프가 주창한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great)’ 만들지, 아니면 ‘암울하게(grim)’ 만들지 지켜볼 일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