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런데 관세 이슈가 전 세계 시장을 뒤흔들었다.”
17일(현지시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연례 주주총회장에서 유럽 최대 부호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공세 이후 달라진 시장 분위기를 이같이 요약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유럽산 패션·가죽 제품에 최대 20%, 스위스산 시계에 최대 31%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이후 세계 최대 럭셔리 그룹인 LVMH의 주가는 36% 하락했다. 연초 700유로를 넘었던 주가는 이번 주 다시 8% 급락했고 프랑스 CAC 40 지수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에르메스에 내줬다가 간신히 회복했다.
LVMH는 전체 매출의 25%를 미국에서 올리고 있지만 관세 압박에 따른 매출 둔화가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며 타격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르노 회장은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LVMH는 미국 내 생산을 늘리고 유럽을 피해갈 수밖에 없다”며 “문제 해결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브뤼셀(유럽연합)의 책임”이라고 못박았다. 이어 “협상은 관료가 아닌 유럽 각국 정상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며 EU의 미온적 대응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다만 아르노 회장은 고율 관세 전쟁을 촉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 아르노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오랜 친분이 있으며 지난 1월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한 바 있다.
그는 “관세로 인해 가격이 오르면 인플레이션이 자극되고,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그 피해는 결국 소비 심리 위축으로 돌아온다”고 우려했다.
경쟁사 에르메스는 오는 5월부터 자사 제품에 붙는 관세 전액을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하기로 했지만, LVMH에겐 쉽지 않은 전략이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에르메스 버킨백이나 켈리백을 구매하는 에르메스 고객층은 가격 인상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지만 LVMH가 고가 가방뿐 아니라 향수, 키링 등 중저가 제품으로 대중적인 소비자층을 확보하고 있어 수백 달러의 인상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아르노 회장이 언급한 미국 내 생산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루이비통 공방 세 곳과 티파니 주얼리 제작소 일부를 제외하면 LVMH는 미국 내 생산 능력이 거의 없다. 외신들은 텍사스에 있는 루이비통 생산 시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실적이 저조한 곳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또한 ‘메이드 인 프랑스’ 명품을 선호하는 소비자 인식이 여전히 강한 만큼, 생산지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LVMH 고유의 브랜드 가치와 품질 기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