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진 21일(이하 현지 시간) 늦은 저녁 교황의 전통적 거처인 바티칸 사도궁의 교황 아파트 문이 붉은 리본으로 묶인 뒤 밀랍으로 봉해졌다. 교황의 공석 동안 관저 약탈 등을 막기 위해 역사적으로 치러온 상징적 조치다. 교황을 상징하는 인장인 ‘어부의 반지’도 파기됐다. 예로부터 바티칸은 이 같은 절차를 통해 현 교황의 임기가 종료됐음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새 교황이 선출되기까지 ‘사도좌 공석’에 돌입한다. ‘노벤디알레(Novendiale)’로 알려진 9일 간의 애도 기간도 시작돼 세계 전역이 교황과 작별하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성 베드로 광장서 26일 장례…성모 대성전에 묻혀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식 장례 절차는 21일 오후 8시 교황이 거주했던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 마련된 나무관에 교황의 유해를 안치하며 시작됐다. 교황의 장례는 평생 청빈했던 그의 삶처럼 소박하게 치러질 전망이다. 교황은 재임 기간 장례 절차를 간소화했고 납·사이프러스·오크나무로 제작된 삼중 관에 안치됐던 전임 교황들과 달리 단순한 나무관을 선택했다. 또 교황의 관은 예전의 높은 관대가 아니라 낮은 곳에 자리해 신도들과 작별을 나눈다. 바티칸에 따르면 교황의 시신은 축복을 받은 뒤 예복을 갖춘 후 23일 오전 9시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져 일반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장례식은 사흘 뒤인 26일 오전 10시 성베드로 광장에서 조반티 바티스타 레 추기경단 단장의 주재로 열린다.
교황의 마지막 쉼터는 생전의 뜻대로 바티칸 외곽 로마 시내의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 마리아 대성당)이 될 전망이다. 교황은 이날 공개된 유언장에서 “내 마지막 지상 여정이 이 유서 깊은 성모 성지에서 끝나기를 바란다”며 무덤의 위치까지 구체적으로 요청했다. 또 무덤은 땅 아래 있어야 하며 단순하고 특별한 장식 없이 ‘프란치스코(Franciscus)’라는 이름만 새겨져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황이 이곳에 안치되면 1세기 만에 바티칸이 아닌 장소에 잠드는 첫 교황이 된다.
韓 공식분향소 명동성당…이용훈·염수정 바티칸行
교황을 애도하는 기간 세계 전역에서는 매일 기도 예배와 추모 미사가 열린다. 교황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정부는 7일 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고 스페인도 사흘 간 국가 전체가 애도의 시간을 가진다.
한국 천주교는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바티칸에서 열리는 교황의 장례 미사에 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와 염수정 추기경, 홍보국장인 임민균 신부 3명이 참가하기로 했다. 천주교 관계자는 “간소한 장례를 원했던 교황의 뜻을 고려해 장례 미사 참가단 규모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주교회의 차원의 공식 추모 미사는 하지 않고 교구별 재량에 맡기기로 했다. 신자들에게는 교황을 위한 9일 기도를 권장했다.
국내 공식 분향소는 서울 종로 주한교황대사관과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 지하 성당에 마련됐다. 염수정 추기경과 정순택 대주교, 구요비 주교, 이경상 주교 등 서울대교구 주교단이 22일(한국 시간) 명동대성당 분향소를 찾아 조용히 기도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일반 조문이 시작됐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추모객들은 분향소 문이 열리기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는 등 긴 행렬을 이뤘다.
조문을 마친 염 추기경은 “좋으신 목자를 온 세계에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기도 드렸다"라며 “특히 아시아 첫 사목지로 한국을 선택해 큰 위로와 격려를 주신데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정 대주교도 “교황께서 약자를 품는 교회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다”라며 “우리 교회도 그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도 이날 분향소를 찾았다.
세계 각지 애도 물결…트럼프·마크롱 참석
교황의 장례 미사에는 각국 고위 인사들이 참석할 전망이다. 앞서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에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부자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모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민 문제 등으로 교황과 충돌하기도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에 참석할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장례식 참석 의사를 밝혔다.
한편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기까지는 최소 보름이 걸린다. 이 기간 교황직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케빈 패럴 추기경이 대행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패럴 추기경을 자신의 사망 또는 사임 후 바티칸을 운영하는 직책인 ‘궁무처장’에 지명했다. 패럴 추기경은 교황의 거처를 폐쇄하고 애도 및 장례 절차를 주도하는 동시에 콘클라베를 통해 선출된 차기 교황의 서임식을 주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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