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인 19일 저녁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는 연극의 열기로 가득 찼다. 충북문화재단이 설립한 지방 공립극단인 충북도립극단(예술감독 김낙형)이 제작한 연극 ‘한 여름밤의 템페스트’가 무대에 오른 날이다. 작품은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과 ‘템페스트’를 엮어 각색한 것이다. 18~19일 서울 공연 이틀 동안 총 관객은 1429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0월 청주예술의전당에서 매 공연마다 1000석 객석이 꽉 찰 정도로 인기였는데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충북도립극단은 ‘지역 연극 예술 생태계 조성’ 등을 핵심 가치로 지난해 창단했다. 과거부터 활발했던 충북 지역의 연극 수요를 채우기 위한 15년 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한다. 극단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지역대표예술단체’로 2년 연속 선정됐다. 덕분에 지역 연극 관람객도 크게 늘었다. 2023년 293회였던 충북도 내 연극 공연 횟수는 2024년 505회가 됐다. 특히 연극 관람권 판매액은 같은 기간 1억 2160만 원에서 다섯 배 가까운 5억 3765만 원으로 증가했다.
지역 예술계도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역 예술대 출신들의 안정적인 데뷔 무대가 생겼고 관련 인프라도 늘어났다. 김낙형 감독은 구미 출생으로 청주대 연극 석사를 마쳤다. 김갑수 충북문화재단 대표는 “관객을 빼앗길 수 있다는 도내 민간 극단들의 우려도 있었지만 결국 지역 연극 시장 자체가 커지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지역 균형 발전이 국가적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심화되는 지역 문화 불균형도 긴급히 해소해야 할 문제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4년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공연 시장 관람권 판매액은 총 1조 4537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5% 증가했는데 지역적으로 불균형은 오히려 커졌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은 지난해 전국 공연 관람권 예매 수의 75.3%(서울은 60.2%), 공연 관람권 판매액의 79.1%(서울 65.1%) 등 대부분을 차지했다. 2023년의 74.1%, 77.5%보다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수도권 외 가장 많은 공연이 열린 지역은 부산과 대구로, 공연 건수는 각각 3.3%, 7% 증가했으나 관람권 판매액은 오히려 8.2%, 7.1% 감소했다.
공연이나 미술을 막론하고 무대를 잃은 지방에서는 청년 예술가들이 유출되고 이는 다시 지방 예술의 어려움으로 나타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반면 서울은 과밀로 신음하고 있다. 한국 전체에서 면적으로 10.2%에 불과한 수도권의 인구 비중은 지난해 50.9%나 됐다. 앞서 2014년에는 49.4%였다. 지방 활성화를 위해서는 일단 기업 등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문화 향유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점은 종종 잊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술산업의 더 나은 도약을 위해서는 지방 예술 활성화가 중요하다는 평가다. 순수든 대중이든 예술 산업도 생산과 소비의 생태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오페라를 제작하고 공연할 경우 배우 뿐 아니라 무대 장치와 음악, 의상, 교육 등에 적지 않은 인원과 비용이 들어간다. 관객이 몰리면서 관광 산업도 발전하게 된다. 기존 관광은 서울에 집중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지방에서 볼 것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김명규 조선대 교수는 “지역민들은 그동안 지역 공연의 질적 저하에 실망감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관람과 거리가 멀어졌다”며 “지역 중심의 지원 체계 개편으로 우선 공연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에는 서울에서 창작·제작된 작품을 지방에서 순회 공연하거나 전시하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이는 결국 ‘서울 생산’과 ‘지방 소비’ 이분법 구도를 고착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예술계 일자리와 매출이 생기는 창작·제작 기지를 지방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진 이유다. 더 나아가 혁신도시의 경우와 같은 문화예술 조직의 전국적 재배치도 필요하다.
지역 순수예술은 지역 ‘대중문화’의 기본 토대가 된다. 문학과 미술, 연극을 공부한 학생들이 결국은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가 되며 영상을 만들게 된다. 이은경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은 “영화나 드라마의 발전은 연극이 저수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며 “순수 예술이 무너지면 K컬처 역시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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