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현지시간) 스페인 전역이 대규모 정전 사태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수도 마드리드와 제2 도시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이 한낮에 전력 공급이 끊기면서, 교통과 통신이 마비되고 수백만 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고립됐다. 스페인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정전 직후 지하철과 열차가 멈춰 서면서 승객들이 객차 안에 갇혔고, 신호등이 꺼진 도로에서는 차량들이 무질서하게 뒤엉켰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화와 인터넷마저 끊겨 시민들이 행인에게 휴대전화를 빌리는 진풍경이 벌어졌으며, 학교 앞은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스페인 최대 일간지 엘파이스는 "최근 역사상 최악의 정전으로 스페인 전역이 마비됐다"고 보도했다. 도로에서는 신호등이 꺼진 틈을 타 차량들이 경합하듯 질주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교통이 마비되자 택시를 잡으려는 인파가 몰리면서 '택시 대란'까지 이어졌다. 슈퍼마켓과 주유소 앞에도 긴 줄이 늘어섰지만, 카드 결제기가 작동하지 않아 현금이 없는 시민들은 물품 구매에 큰 불편을 겪었다.
정전은 저녁까지 이어졌고, 일부 지역은 밤늦게 들어서야 전력 공급이 부분적으로 복구됐다. 이웃한 포르투갈과 프랑스 남서부 일부 지역도 영향을 받았으나, 프랑스에서는 비교적 신속한 복구가 이뤄졌다.
스페인 에너지 당국과 전력회사 REE는 이번 대규모 정전의 원인을 "스페인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전력망 단절"로 설명했다. 에두아르도 프리에토 REE 시스템 운영 책임자는 기자회견에서 "전력망 연결이 끊기면서 전력 흐름을 안정적으로 분산·조정해주던 시스템이 붕괴했다"고 밝혔다.
스페인 에너지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3분께 단 5초 만에 15기가와트(GW)의 전력이 급격히 손실된 것으로 파악됐다. 프리에토는 "전력 손실이 유럽 전체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로 발생해 스페인과 프랑스 전력망이 분리됐고, 이로 인해 대규모 정전이 초래됐다"고 부연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사이버 공격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토니오 코스타 유럽의회 의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재까지 사이버 공격의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성급한 추측은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REE는 이날 밤 기준 국토의 약 60%에서 전력 복구를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지역도 29일까지 복구를 마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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