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건설사 폐업이 줄줄이 이어지는 가운데 건설 업계는 분양가상한제 폐지를 정부에 직접 건의했다. 분양가상한제에 가로막혀 자재비 인상 부담을 건설사가 전적으로 부담해 경영난이 심각해진 반면 소수의 수분양자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누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분양가상한제가 주택 가격 통제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수도권 등 주요 지역의 공급 차질을 유발하는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일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5개월간 종합건설업 폐업 신고 공고 건수는 299건(폐업·정정에 따른 중복 4건 제외)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건수(263건)를 넘어섰다. 현재와 같은 추세면 지난해 수치를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연간 종합건설업 폐업 신고 건수가 641건(전체 공고 기준)을 기록하며 조사가 시작된 200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폐업한 건설사들은 대부분 시공 능력 순위 100위권 밖에 있는 중소형 기업이지만 삼부토건(71위)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등 중견 건설사도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상장 건설 업체 부채비율은 200%를 돌파했다. 분양 평가 전문 회사 리얼하우스가 34개 상장 건설사의 금융감독원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평균 부채비율은 203%로 2023년(137%) 대비 66%포인트 상승했다. 대형 건설사들도 재정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다.
건설 업계는 이 같은 위기가 건설사들을 옥죄는 분양가 규제 때문으로 진단하고 있다. 공사비는 급등하는데 분양가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가격 괴리가 커지고 주택 사업 의존도가 높은 중소·중견사가 쓰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분양가상한제는 주택법 57조에 근거해 특정 지역에서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분양할 때 일정한 기준으로 산정한 분양 가격 이하로만 판매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공공택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및 용산구 등 주거정책심의위원회가 지정한 민간택지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공사비 원가관리센터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31.11을 기록했다. 2020년 건설 공사비를 100으로 볼 때 5년간 30% 이상 올랐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세전쟁, 건설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수입 원자재가 급등한 결과다.
하지만 이 같은 건설 비용 증가는 분양가상한제 아래에서 가격과 매끄럽게 연동되지 않는다. 분양가상한제에서는 기본형 건축비로 가격 상한을 정한다. 국토교통부는 매년 3월과 9월 정기적으로 기본형 건축비를 고시한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아파트는 기본형 건축비에 택지비, 건축 가산비, 택지 가산비 등을 합해 분양 가격을 결정한다. 올해 3월 기본형 건축비(16~25층 이하, 전용면적 60~85㎡ 지상층 기준)는 ㎡당 214만 원으로 지난해 9월(210만 6000원) 대비 1.61% 인상에 그쳤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중소 건설사는 물론 대형 건설사 수익성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 부동산 정보 분석 업체인 부동산R114가 지난해 기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의 매출 대비 원가율을 분석한 결과 92.98%로 집계됐다. 1000원을 벌기 위해 약 930원의 원가를 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의 매출 대비 원가율은 각각 105.36%, 100.66%로 100%를 넘었다.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 보니 분양가상한제는 결국 ‘로또 청약’으로 이어진다. 분양가에 제한이 걸리면서 주변 시세를 반영하는 민간 분양가보다 낮게 책정되고 청약 당첨자는 앉아서 수억 원을 버는 기이한 구조를 낳았다. 프롭테크(부동산 정보 기술) 업체 직방 분석 결과 올해 분양가상한제 적용 단지의 청약 경쟁률은 일반 분양 단지보다 6배 더 높게 나타났다.
최근 진행된 경기도 과천시 과천지식정보타운에 조성된 ‘과천그랑레브데시앙’ 무순위 청약 1가구 모집에 13만 8000여 명의 신청자가 몰린 것은 현 실태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 단지는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신혼희망타운 공공분양으로 분양가가 시세보다 10억 원 낮게 책정됐다. 수익 공유형 모기지를 의무 가입해야 하는 아파트이지만 차익을 나누더라도 수억 원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신청이 폭주했다.
업계는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고 분양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분양 가격 산정 기준이 시장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건설사 수익성이 후퇴되고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 위축에 따른 가격 상승을 조장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민간택지에 대해서는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고 폐지가 불가하다면 분양가 산정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며 “분양가상한제 폐지로 시장 기능을 회복하고 도심 주택 공급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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