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 증상이 없고 조기 발견이 어려워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췌장암 수술 환자의 예후를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삼성서울병원은 췌담도암센터의 박주경 소화기내과 교수와 한인웅 간담췌외과 교수, 장기택 병리과 교수 공동 연구팀이 인공지능(AI) 기반 공간적 종양 침윤성 림프구(TIL·Tumor Infiltrating Lymphocyte) 밀도 분석과 췌장암 수술 환자의 생존율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췌장은 복부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 암이 진행되기 전까지 증상이 전혀 없거나 매우 미미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2년 췌장암으로 신규 진단된 환자는 9780명으로 갑상선암을 포함한 전체 암 가운데 발생률 8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췌장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여전히 1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내 췌장암 발생자의 43.8%가 원격 전이 단계에서 발견됐는데, 이 경우 5년 생존율은 2.6%에 불과하다.
종양에 대한 면역반응을 반영하는 'TIL'은 의료진이 일일이 밀도를 측정할 경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관찰자 간 측정 자이가 있는 탓에 그동안 현장에서 쓰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AI 기반 면역형질분석 플랫폼인 ‘루닛(328130) 스코프 IO(Lunit SCOPE IO)’를 사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췌장암 수술 환자 304명을 대상으로 후향적 코호트 분석을 진행한 결과 TIL이 풍부한 ‘면역활성형(immune-inflamed phenotype)’ 환자군의 생존 기간(중앙값)은 35.11개월로, 그렇지 못한 ‘면역결핍형(immune-desert phenotype)’ 환자군(11.6개월)보다 3배 가까이 길었다. 종양 크기가 더 나빠지지 않은 채 생존한 기간을 뜻하는 무진행 생존 기간 역시 면역활성형 환자군의 중앙값이 14.63개월로, 면역결핍형 환자군(6.57개월)보다 2배 가량 앞섰다. 췌장암 환자의 수술 조직에서 TIL 밀도가 높을수록 생존 결과가 유의미하게 개선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면역표현형에 따라 병기를 거슬러 생존율이 역전하는 현상도 확인됐다. 일반적으로 췌장암 병기 1기가 2기에 비해 예후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기 췌장암 환자 중 면역활성형 환자의 예후는 췌장암 1기 비면역활성형 환자보다 나았다.
박 교수는 “인공지능이 암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며 “인공지능 기반 면역 표현형 분석이 향후 췌장암 환자의 정밀 예후 예측과 맞춤 치료 전략 수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NRF)과 루닛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으며, 미국의사협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자마 서저리(JAMA Surgery)’ 최근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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