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북쪽을 향해 차량으로 1시 10분 남짓 달리면 북한 황해남도 개풍군과 불과 1.4㎞ 밖에 떨어진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해발 155m 고지 일대에 자리한 평화생태공원 내 자리한 애기봉 전망소(OP)에 도착한다. 이곳은 수도권의 서쪽 관문을 책임지는 서부전선 최전방에서 김포 전방 및 북한군의 동향을 감시하는 경계작전의 첨병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지리적 요충지다.
특히 평화와 경제가 공존하는 시험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글로벌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 ‘김포 애기봉생태공원점’이 입점해 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흐르는 강인 조강은 물론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한 땅을 맨눈으로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장소다. 전 세계 스타벅스 매장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29일 문을 연 이후 지난 6월까지 7개월간 이 매장에서 구매한 소비자는 12만 3000명에 이를 정도다.
국방부 출입기자단이 방문한 2일은 자욱한 안개가 끼고 가끔씩 비가 내려 한강 하구 너머로 보이는 북한 땅 분위기는 너무나 조용했다. 북한이 보여주기 용도로 만든 '해물 선전마을'을 제외하면 개발이 거의 되지 않은 채 황량한 모습 그대로였다. 망원경 너머로 낡은 시설물과 공터에서 무언가 작업 중인 주민들의 모습이 간간이 포착됐다.
민간인에게 출입이 금지된 애기봉전망대 4층에 올라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안개가 자욱한 흐린 날씨에도 북한 지형이 한 눈에 들어왔다. OP 전방 좌우측으로 산기슭이 펼쳐진 가운데 좌측 11시 방향에는 우리 주민들을 괴롭혔던 대남 소음 확성기가 놓여있다.
한강하구 중립수역을 두고 남북이 갈라져 있어 이 곳에서 들리는 소음은 그 어느 곳보다 심한 곳이다. 이에 우리 군은 장병들도 생활관에 방음 창문을 설치할 정도다. 물론 지금은 북한의 소음 방송과 남한의 대북 방송이 멈췄지만 북녘땅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함과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천주훈 애기봉 OP장(중위)은 “북한의 대남방송이 지속됐을 때는 교동도나 강화도 등 접경지역 주민들의 소음피해가 커 갈등도 많았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군과 주민들의 마찰 요소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망원경을 들고 북녁땅을 들여다보니 북측 산 능선에 감시초소가 일정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고 철조망도 곳곳에 이어져 있었다. 북한군의 전술도로이자 주민들의 탈북 흔적을 감시·추적하기 위한 ‘흔적로’가 눈에 들어왔다.
시야 정면에는 북한 개풍군 해물선전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북한이 보여주기식으로 만든 마을이다. 고배율 망원경으로 마을 쪽을 바라보니 공사 중인 인부와 마을을 오가는 북한 주민들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마을 중간에 위치한 선전용 탑 인근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 추정되는 사진과 함께 빨간 글씨로 적힌 선전용 문구도 보였다.
전망대 우측 1시 방향 산 중턱에는 붉은 흙길이 보였다. 이 길이 어떤 용도인지 묻자 해병대 관계자는 “귀순하는 북한 주민들의 발자국을 잡아내기 위한 용도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지난해 8월 8일 북한 주민 1명이 한강하구 중립수역을 통해 귀순하기도 했다.
그 뒤쪽으로는 지난해 북한이 한창 부양했던 대남 오물풍선 원점도 위치하고 있다. 우리 군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계속해서 살포할 당시 북한군 준비 동향과 살포 모습이 이 곳에서 직접 관측됐다고 한다. 또 다른 해병대 관계자는 “전방 북측 지역에서 오물풍선을 살포하는 즉시 군에서 감시·추적하고 있다”며 “탈북단체가 북측으로 보내는 풍선 또한 애기봉OP에서 관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기봉은 병자호란 당시 평안감사와 각별한 애정을 나눴던 기생 ‘애기’의 이야기가 내려오는 곳이다. 6·25전쟁 때는 해병대가 큰 전투를 치른 격전지이기도 하다.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애기의 한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며 애기봉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친필 비석도 세웠다.
이곳을 포함해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수도 서울특별시의 서측 최전방을 지키는 수도방위부대는 해병대 2사단은 다. 사단의 신조 중 하나가 ‘수도 서울 서측방 절대 사수’일 정도다. 별칭은 ‘청룡부대’다.
해병대 2사단은 김포와 강화도, 교동도, 수도권 서측 가장 끝에 위치한 외딴섬 말도에 이르기까지 북한과 마주 보는 해안에 모든 병력을 배치해 한강 하구 남북 중립수역 전체에 대한 경계 작전을 수행한다. 사단 병력은 김포와 강화 지역에 주둔하며 255㎞에 달하는 해안 경계를 담당한다. 이는 휴전선(250㎞)보다 길다. 휴전선은 육군 10여 개 사단이 동원돼 지키고 있다.
한강 하구 남북 중립수역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에서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까지 약 81㎞ 구간이다. 북한 개성시 판문군 임한리부터 황해남도 해남리와 마주하고 있다. 중립수역은 남한과 북한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한강에 설정한 별도의 군사분계선(MDL)이 없는 완충 구역이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가 관할한다.
해병대 2사단은 다연장로켓 ‘천무’, K-9 자주포, 대함 유도로켓 ‘비궁’, MUH-1 ‘마린온’ 헬기 등 강력한 첨단 무기를 운용하고 있다. 출입기자단은 자리를 옮겨 ‘해병대의 꽃’이라 불리는 상륙작전의 필수장비인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를 운용하는 상륙장갑차대대로 이동했다. 내륙지역 대침투작전과 서측도서 증원, 합동도서방어작전 투입 임무까지 수행한다.
해병 대원들을 싣고 수상에서 지상으로 상륙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KAAV는 1998년에 기술도입 방식으로 국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전차처럼 궤도가 달려있어 험준한 지형에서도 이동이 가능하고 최고 속도가 시속 72㎞에 달한다. 연막을 생성시켜 자체적으로 은폐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탑승체험을 위해 KAAV에 올라탔고 요란한 굉음을 내며 기동하고 시작했다. 탑승한 지 딱 3분이 지났는데 찌는 듯한 더위로 숨이 턱 막혔다. 에어컨도 없는 이 공간에서 몇 시간을 탑승하며 훈련하는 장병들 모습을 생각하면 열악한 환경에서도 반드시 싸워 이기는 해병대 정신을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았다.
연병장을 빠져나간 뒤에는 부대 내 언덕과 비탈길을 거침없이 오르내렸다. 영내에서 탑승체험이기에 속도는 최대 시속 72㎞에 한참 못 미치는 20㎞ 수준으로 제한했다. 그럼에도 부대를 한바퀴 도는 동안 KAAV의 기동 성능을 체험하기에는 충분했다.
KAAV는 대한민국 해병대를 상징하는 대표 장비 중 하나다. 20명의 병력을 태우고 해상에서도 7시간 기동할 수 있는 상륙작전의 핵심 무기체계다. 병력수송용인 ‘KAAVP7A1’과 지휘용인 ‘KAAVC7A1’, 구난/정비용인 ‘KAAVR7A1’ 세 종류로 있다.
상륙장갑차대대는 유사시 서측 도서 증원과 합동 도서방어작전, 내륙 대침투작전까지 수행한다. 필요하면 경계 증원부대로도 전환된다. 상륙장갑차대대 관계자는 “우리 부대 KAAV는 그야말로 해병대의 발이자 방패”이라며 “우리는 해상과 육지를 가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항상 완벽한 출동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해병대를 격상해 ‘준4군 체제’를 갖추겠다고 약속했다. 3성 장군인 해병대사령관을 4성으로 승격하는 것은 단순히 사령관의 계급을 높이는 상징성 부여가 아니다. 열악한 작전 환경인 최전방에서 철통같은 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유사시 상륙작전 임무을 완벽하게 완수할 수 있도록 전체 해병대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는 국군통수권자의 의지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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