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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면 똑같이' 원칙 깨져…'돌봄 지분' 또 다른 갈등 불씨로[상속전쟁]

<하> 기여도가 분쟁 새 뇌관

유류분 산정방식 일률 균등분할

헌재 작년 4월 헌법불합치 결정

'기여' 법적 정의는 여전히 모호

해석따라 입장 극명히 갈릴수도

입증책임에 재판 장기화 가능성

이미지투데이




이 모(45) 씨는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퇴원한 뒤 홀로 집에서 간병을 맡았다. 자녀들의 학업과 남편의 출퇴근 사정을 고려해 가족과 분가해 5년 넘게 어머니를 돌본 것이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낮에는 어머니를 주간보호센터에 보내고 저녁과 주말에는 식사, 투약, 기저귀 케어까지 도맡았다. 갈등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시작됐다. 첫째 오빠와 동생 모두 법정 상속분과 유류분을 주장했고 어머니가 생전에 이 씨에게 건넨 현금을 두고도 유류분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나눌 재산이 많지도 않았지만 형제들은 결국 법정 다툼에 들어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다툼은 이 씨에게 결코 이롭지 않았지만 내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가 정한 유류분 관련 민법 개정 시한(2025년 12월 31일)은 이날 기준 175일 남았다. 헌재는 지난해 4월 유류분 제도에서 생전 기여를 반영하지 않는 민법 조항(제1118조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국회에 법 개정을 명령했다. 부모를 간병하거나 경제적·정서적으로 헌신했더라도 유언이나 증여가 없는 한 다른 형제들과 똑같이 나누도록 강제하는 것은 헌재는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상속과 유류분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명확히 구분된다. 상속은 사망한 사람(피상속인)의 재산을 상속인에게 나누는 전반적인 절차를 뜻한다. 반면 유류분은 상속인에게 반드시 보장돼야 할 ‘최소한의 몫’이다. 유언이나 생전 증여로 인해 이 유류분조차 받지 못한 상속인은 부족분에 대해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예컨대 이 씨의 사례처럼 상속인이 자녀 3명(이 씨, 첫째 오빠, 막내 동생)이라면 각자의 법정 상속분은 전체 재산의 3분의 1이다. 이 중 유류분은 그 절반(6분의 1)으로 보장된다. 즉 유언이나 생전 증여 등으로 유류분에 못 미치는 재산을 받았다고 판단될 경우 나머지 자녀가 그 부족분을 반환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유류분은 단순히 사망 당시 남아 있는 재산만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고인이 생전에 특정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까지 모두 포함해 ‘기초재산’을 산정한 뒤 법정 상속지분과 유류분 비율을 적용해 각자의 권리를 계산한다. 생활비나 병원비 명목으로 지급된 금전도 일정 금액 이상일 경우 유류분 산정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이 씨의 사례에서도 어머니가 생전에 준 현금이 유류분보다 많았다고 주장한 형제들이 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문제는 법적으로 유류분이 보장돼 있다 해도 지금까지는 생전의 간병이나 돌봄, 경제적 기여와 같은 ‘기여분’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 씨처럼 수년간 어머니를 돌본 경우에도 법적 기준상 다른 형제들과 똑같이 나눠야 했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유류분 산정 방식에서 일률적인 균등 분할이 아니라 기여 여부를 반영할 수 있도록 민법 조항을 손질하라는 취지다.

헌재 결정에 따라 법이 개정되면 이 씨처럼 생전에 부모를 돌보고 희생한 자녀가 법적으로도 그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동안은 ‘같은 자식이면 똑같이 나눈다’는 원칙 아래 누가 얼마나 돌봤는지는 무시됐기 때문에 가족 간 억울함이 쌓여 법적 분쟁의 원인이 됐다. 기여에 따라 더 받는 구조가 정착되면 감정 싸움으로 비화하는 상속 분쟁도 줄일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전망이다.

하지만 기여분 도입이 오히려 가족 간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무엇이 ‘기여’인지에 대한 법적 정의가 여전히 모호해 해석에 따라 자녀 간 입장이 극명히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들 간에 “내가 더 많이 돌봤다”는 주장이 엇갈릴 경우 또 다른 유류분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병원 진료 동행 기록이나 간병 일지처럼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는 경우 일상적인 돌봄이나 정서적 지원과 같은 ‘비금전적 기여’는 법정에서 인정받기 어렵다. 결국 사적인 가정사를 세세히 문서로 남기고 가족 간에 이를 두고 다투는 구조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입증 책임이 고스란히 당사자 개인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한다. 기여를 인정하는 법의 취지는 타당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소송 당사자에게 과도한 입증 책임이 부과되면서 재판이 장기화되거나 가족 간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동시에 상속 및 기여분 청구 소송을 담당하는 가정법원의 업무 부담도 만만치 않다. 대법원이 발표한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국 6개 가정법원과 지방법원 가사부가 처리한 본안 사건은 2023년 기준 약 17만 건에 달한다. 그러나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전담 법관 수는 약 200명 남짓에 불과해 1인당 연간 800~900건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상속 분쟁과 관련한 복잡한 비송 사건까지 더해지면 전문 조사관 부족과 함께 사건 지연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김태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가족 간의 문제더라도 법원을 찾는 순간 입증 여부에 따라 부모의 재산을 나눠 갖는 것 아니겠나”라며 “유언장·신탁 등 사전 설계 장치 없이 소송으로 가는 경우 이를 판단하는 법원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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