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서열 1위인 댄 케인 미국 합참의장이 11일 한미일 합참의장회의(Tri-CHOD)에서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초점은 억지력 재정립이며 여기에는 3국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제는 북한 위협에만 국한되지 않고 진정한 책임 분담을 향해 함께 미래의 길을 밝혀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간 관세 협상과 맞물려 양국 간 정상회담 개최 시기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합참의장이 주한미군 역할 변경 등을 포함해 방위비 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케인 미 합참의장은 이날 회의에서 “북한과 중국은 그들 자신의 의제를 추진하기 위해 명확하고 분명한 의도를 갖고 전례 없는 군사력 증강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명수 합참의장은 기존처럼 북핵 대응에만 초점을 맞춰 발언해 미국과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대만 유사시 등에 중국 견제를 위해 주한미군을 동원할 수 있다는 속내를 노골화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3월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을 국방부 내부에 배포한 바 있다. 이 지침에는 유럽·중동·동아시아의 동맹국들이 러시아·북한·이란 등의 위협 억제에서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토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위해 동맹국이 국방에서 더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로 부상한 케인 미 합참의장의 이날 발언은 사실상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주목된다. 9일 방미 일정을 끝내고 귀국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통상·투자·안보 패키지로 미국과의 관세 이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7말 8초’ 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여전히 유동적인 가운데 미국 합참의장이 한국에서 처음 열린 한미일 합참의장회의에서 다시 한번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방위비 인상 등을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는 일정 부분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카드와 함께 무역적자 해소를 요구하는 미국 측을 달래기 위해 첨단무기 구매를 일부 수용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대선 공약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까지 연계해 패키지로 논의될 수 있다는 관측마저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더라도 우리 안보에 필수적인 핵추진잠수함 등 미국의 첨단무기 및 군사과학 기술 도입 등을 협상 카드로 활용해 성사시키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사무총장은 “관세 협상과 맞물려 무역적자 해소를 요구하는 미국 측의 압박이 거세지는 만큼 첨단무기 구매 등 통상과 안보를 패키지로 논의하는 게 국익 측면에서 실효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한미일 3국은 제주도 남방 공해상에서 공중 훈련도 실시했다. 이번 훈련에는 B-52H 전략폭격기와 함께 한국 공군의 KF-16 전투기, 일본 항공자위대의 F-2 전투기 등이 참여했다. B-52H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전개는 올 들어 처음으로, 한미일 공중 훈련은 지난달 4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다.
국방부는 “이번 훈련은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일의 억제 및 대응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시행했다”며 “한미일 3국은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3자 훈련을 지속해나가는 가운데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고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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