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10일(현지 시간)로 예정됐던 미국 조지아주 구금 근로자들의 출발이 늦어진 데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단순히 행정적 절차가 지연됐을 수도 있지만 관련 당국 간 이견이 발생했다거나 막판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 등이다.
외교부는 10일 공지를 통해 이날로 예정됐던 한국인 근로자들의 출발이 미 측 사정으로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4일 조지아주 서배나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에서 이민 당국에 의해 체포된 한국인 300여 명은 이날까지 구금돼 있었던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 시설에서 풀려나 인근 애틀랜타 공항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이들을 태워 귀국할 대한항공 전세기 KE2901편은 이미 한국 시각으로 10일 오전 10시 21분께 인천공항에서 이륙했다. 포크스턴의 ICE 구금 시설로도 현지 시간 10일 이른 오전 여러 대의 버스가 들어가는 모습이 관측되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도 구금된 근로자들이 묵었던 숙소 체크아웃 등을 마치고 ICE 구금 시설로 향하던 중 뉴스를 통해 출발 연기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당초 석방될 시간이 넘어서도록 구금 시설을 나서는 한국인 근로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엿새로 끝날 줄 알았던 구금이 기약 없이 더 길어진 셈이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통령실도 긴급히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외교부는 “가급적 조속한 출발을 위해 미 측과 협의를 유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귀국행 연기 이유와 관련해서는 ‘미국 측 사정’이라고만 밝혔다. 외교부가 언급한 ‘미국 측 사정’이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구체적인 이유가 지목되지 않아 미 정부 부처 사이에 말 못할 알력 다툼이 불거진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이민자 단속을 지휘하는 국토안보부(DHS)의 크리스토퍼 놈 장관은 8일 “조지아에서의 단속 작전을 통해 구금된 이들 다수에 대해 우리는 법대로 하고 있고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며 “미국에서의 게임의 규칙이 뭔지 모든 기업이 확실히 알게 될 훌륭한 기회”라고 강경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미 행정부 전반의 기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조업 부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위해 해외 기업을 유치하고 대미 투자를 유도해야 하는 상무부 등의 입장에서는 조지아주 사태로 대미 투자를 꺼리게 될 해외 기업의 요구 사항을 마냥 외면하기 어렵다.
근로자들의 출국 방식에 대해 한미 정부 간 협의 내용이 막판에 뒤집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 정부는 향후 5년간 미국 재입국이 제한되는 ‘추방’이 아닌 ‘자진 출국’의 방식으로 이들이 출국하고 향후 재입국 시 불이익을 받지 않는 방향으로 미 정부와 교섭해왔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조지아에 구금된 근로자들이 향후 미국 재입국과 관련해 추가적인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에 대해 “(미 측과) 대강의 합의가 이뤄졌다. 최종 확인 절차를 앞두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에 대해 국토안보부나 ICE 등이 제동을 걸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단순히 행정적 절차가 지연되고 있을 개연성도 제기된다. 4일 체포부터 구금, 영사 및 변호사 면담과 석방 교섭에 이르기까지 전례 없는 속도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이뤄져온 상황에서 미 측의 행정 처리가 늦어졌을 수 있다는 추측이다. 이번에 구금된 인원은 한국인 300여 명을 포함해 총 475명에 이른다. 미국 이민 당국으로서도 사상 최대 규모의 단속 작전이었다. 2020년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배터리아메리카의 미국 현지 공장에서 협력업체 소속 한국인 근로자 10여 명이 관광비자로 일하다 체포된 후 구치소 수감 15시간 만에 풀려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때와는 규모가 다르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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