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7 대책에서 공공재개발을 통해 5년 내 착공 물량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서울 내 34곳의 공공 재개발 사업지 중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사업장은 단 한 곳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흑석2구역 등 일부 사업지에서는 민간 재개발을 원하는 일부 주민의 반발로 소송전이 벌어지는 등 착공 실적이 없는 공공재개발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공공재개발을 통한 주택 공급 시점이 뒤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17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서 추진되는 공공재개발 사업장은 총 34곳이다. 이 중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사로 참여하는 사업장이 20곳,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시행사인 사업장이 14곳에 달한다. LH와 SH는 2021년 1차(24곳)와 2022년부터 2차(10곳)에 걸쳐 공공재개발 대상지를 선정해 사업을 추진해왔다. 정부는 앞서 2021년 대상지 선정 후 5년 안에 착공에 돌입해 총 34곳에서 4만 3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34곳의 공공재개발 사업지 중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사업장은 신설 1구역 한 곳이다. 정비구역 지정조차 완료되지 못한 사업장은 전체의 절반 수준인 16 곳이다.
공공재개발이 늦어지는 데는 낮은 보상 가격, 공공기여 확대로 인해 사업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민간 정비사업을 적용해도 사업성이 나오는 핵심 지역의 경우 공공기여가 늘어나는 공공재개발에 대한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아직 착공 실적도 전무하다 보니 선뜻 주민들의 동의를 끌어내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공공재개발 사업지 중 소송전이 벌어지는 등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한 곳도 적지 않다. 흑석2구역의 경우 일부 토지 등 소유자가 동작구청과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주민대표회의 등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사업시행계획인가 처분 무효'의 소를 제기했다. 흑석2구역은 SH가 시행을 맡았고 2021년 1차 사업지로 선정됐다. 이후 삼성물산을 시공사 선정한 뒤 최고 49층, 1012가구 대단지 조성을 준비 중인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행정기관과 시행자가 주민 협의를 무시한 채 강제 집행에 나서고 있다"며 "현저히 낮은 수준의 보상계획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어 심각한 재산권 침해도 우려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주민 의사를 무시한 채 공공재개발을 계속 추진한다면 이번 소송과 별도로 공공재개발에 반대하는 토지 소유자와 연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반발했다. 이 외에도 △동작 본동 △금호 23구역 등도 공공재개발 찬성파와 반대파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소송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정부는 9·7 대책에서 용적률 상향 등을 통해 사업성을 높여준 만큼 공공재개발에 대한 반대 여론이 잠잠해 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는 9·7대책에서 공공재개발을 추진하면 법적상한 용적률을 기존 1.2배에서 1.3배로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주민이 공공시행자에게 지급하는 사업시행 수수료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고 SH 등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간소화 해 사업 기간을 단축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윤수민부동산전문위원은 “강북 등 민간 재개발로도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 지역의 경우 공공재개발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정비업계에서는 공공기여 완화 등 사업성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공공재개발의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용적률 완화를 약속하면서도 공공임대 등 공공기여 등도 추가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공사의 한 관계자는 “공공재개발은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는 게 목적인 국책 사업”이라며 “분양가를 높게 산정할 수도 없을 뿐더러 공공기여가 발목을 잡을 경우 토지 소유자들의 반발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상경 국토부 1차관은 이날 공공주택 공급 점검회의를 열고 “주택공급은 정부 혼자만의 힘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과제”라며 “‘충분한 주택의 신속한 공급’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정부, 지자체, 공사, 업계가 하나의 팀이 되어 역량을 결집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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