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경북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6년 만의 회동을 갖기로 하면서 미중 무역 협상도 중대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가교’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낸다면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펀드와 관련한 이견으로 진전이 더딘 한미 관세 협상에도 순풍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흘러나온다.
미중 전략 경쟁에서 핵심 사안으로 꼽혀왔던 틱톡 문제가 마무리돼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20일(이하 현지 시간) 중국 바이트댄스가 운영하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대해 “틱톡 미국 사업권 매각과 관련한 합의가 다 됐다고 100% 확신한다”며 “며칠 내로 합의서 서명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틱톡 미국 앱의 과반 지분은 미국인들이 가질 것”이라며 “알고리즘 역시 미국의 통제 하에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틱톡의 미국 사업권이 미국에 매각되고 국가 안보 위협의 우려도 차단할 것이라는 의미다.
틱톡 문제가 마무리된다면 양국의 통상 갈등도 한층 완화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에 제시한 관세 유예 시한은 11월 10일이다. 이를 감안하면 10월 31~11월 1일 열릴 APEC 정상회의라는 무대가 미중 갈등의 최종 담판장이 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에 2기 임기 최초로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힌 만큼 양국의 협상이 이미 상당히 진전됐을 가능성도 있다. 경주 APEC 행사 전에 미중이 관세 협상을 사실상 마무리하고 APEC 무대를 관세 협상 타결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틱톡이라는 산을 넘어도 미중 간에는 반도체, 우크라이나 전쟁, 펜타닐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반도체의 경우 중국은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수출통제에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 대중 수출을 제한하고 있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가 중국 내 반도체 공장에 장비를 공급할 때 허가를 받도록 제도 변경을 예고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엔비디아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추가 조사에 문제 제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양국 정상이 한국을 담판의 무대로 선택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일종의 중재자 역할을 얼마만큼 해낼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공개된 미국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불가’를 재확인하면서 한국이 미중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신화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미중 정상회담의 장소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가교 역할을 보여준다면 이후 (한미 간) 관세 협상에도 힘을 받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김동중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낄 자리가 있다는 생각 자체가 지나친 기대”라면서도 “미중 갈등이 해소되는 만큼 한미 관세 협상에 숨통이 트일 것이고 특히 한국 땅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이 큰 진전을 이룰 경우 그 자체가 대미 협상에 레버리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방한 방식은 모두 국빈 방문이 유력하다. 우리 정부는 필요에 따라 해외 정상의 잇단 국빈 방문에도 열려 있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두 정상과 각각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19일 브리핑에서 “시 주석이 방한하면 (한중) 양자 회담이 있을 것”이라면서 23일 미국 뉴욕에서 개회하는 유엔 총회 기간에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없는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는 근래 회담한 바 있고 10월에도 (경주 APEC을 통해) 회담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APEC 정상회의 전까지 한미 관세 협상이 한미 정상회담 성사 여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미국이 19일 소위 ‘전문직 비자’인 H-1B 비자 수수료를 1인당 10만 달러(약 1억 4000만 원)로 대폭 인상한 점도 향후 관세 협상과 관련해 안심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미 양국은 이달 초 미국 조지아주에서의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 이후 비자 관련 워킹그룹을 구성해 H-1B 쿼터 확보 등 폭넓은 협의를 해왔다. 이 와중에 미 행정부가 새로운 비자 장벽을 발표하면서 향후 워킹그룹의 활동에도 어려움이 가중될 개연성이 있다.
연내 개최가 예상돼 왔던 한일중 정상회담의 경우 올해 주최국이 일본인 만큼 연말 일본에서 별도로 열릴 공산이 크다. 이밖에 APEC을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 또는 남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제기됐으나 위 실장은 17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 간담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APEC에 올 가능성이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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