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씨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해군 장교로 입대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기지사령부 제3 정문 위병소를 이씨가 탄 미니밴이 통과할 때는 취재진과 삼성전자 관계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씨가 학사사관후보생(사관후보생) 입영식 행사장으로 들어갈 때는 취재들이 몰려 들어 사진을 찍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연출했다.
그러나 중요한 대목은 2000년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과 미국 복수 국적을 가지고 있던 이씨가 병역 의무를 위해 미국 시민권까지 포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는 점이다.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보유한 병역의무 대상자가 자원 입영을 신청한 사례는 한 해 평균 100여명에 불과할 정도다.
이씨는 해군 제139기 학사사관후보생(OCS·Officer Candidate School)으로 입영해 11주간 장교 교육·훈련을 받고 12월 1일 해군 소위로 임관한다. 훈련 기간과 임관 후 의무복무 기간 36개월을 포함한 군 생활은 총 39개월이다. 일반 사병 18개월 보다 복무 기간이 긴 해군 장교로 입대한다는 점에서 이씨의 진정성이 느껴진다며 칭찬이 쏟아졌다.
이씨 보직과 복무 부대는 교육훈련 성적, 각 병과의 특기별 인력 수요 등을 감안해 임관 시 결정된다. 분명한 것은 통역 장교로서 군 복무를 한다는 사실이다. 이씨가 지원할 때 모집병과로 전문분야인 함정병과 통역(영어) 요원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입영하는 김 모씨는 “이재용 회장 아들이 일반 사병보다 복무기간이 긴 장교로 입대한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접했다”며 “놀라움과 존경스러움이 느껴졌다며 군 생활도 훌륭하게 마무리해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사례를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민정씨는 지난 2014년 해군 학사사관후보생으로 자원 입대해 소위로 임관한 뒤 6개월 간 아덴만 청해부대에서 근무를 했다. 이후 서해2함대 등에서 약 3년 간의 복무를 마친 뒤 해군 중위로 전역했다.
이씨는 해군 장교로 군 복무하지만 사실 해병대 제139기 학사사관후보생 보병병과(통역 장교) 모집에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선택에 따라선 해병대 통역 장교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2019년 국회에서 군인사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해군참모총장이 해군·해병대 학사사관후보생을 함께 모집했고 사관후보생은 3개월 가량 장교 교육·훈련을 받아 소위로 임관했다.
하지만 군인사법 제19조, 제64조에 따라 해군참모총장의 권한을 일정 부분 수탁받아 해병대사령관이 해병대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해병대븐 4년제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장교를 선발할 때 해군의 ‘해군 학사사관후보생’과 동일한 ‘해병대 학사사관후보생’ 모집을 실시한다.
따라서 군인사법 개정 덕분에 이씨는 해군과 해병대에 각각 지원할 수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해군 장교의 길을 선택했다. 해군 장교를 선택한 이유를 추측해보면 우선 모집 일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해군은 (통역)실기시험은 4월 26일, 1차 합격자 발표는 5월 13일이다. 반면 해병대는 (통역)실기시험은 5월 17일, 1차 합격자 발표는 6월 5일로 발표 시기가 훨씬 늦다. 게다가 2차 전형인 면접·신체·인성검사가 해군과 겹칠 수 있고, 해병대는 체력평가도 따라 받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입영 9월 1일, 임관 12월 1일만 똑같다.
무엇보다 해군 장교의 높은 위상을 선호했을 가능성이 높다.
해군 장교는 국내외 외교·문화 행사, 순항훈련, 국제관함식 등에 참여해 군사외교관으로 국가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앞으로 삼성그룹을 이끌어 갈 이씨가 대한민국 해군 (통역)장교로서 이 같은 행사에 참석한다면 다양한 경험을 쌓고 국제적 안목을 키우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병역 의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되는 셈이다.
재벌가 자제의 통역 장교 근무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2006년 제117기 공군 학사사관후보생으로 자원 입대해 국방의 의무를 이행했다. 김 부회장은 당시 국방부 장관 직속 통역을 맡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