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공투자은행(Bpifrance)의 수장이 “유럽은 중국의 산업과 미국의 기술 사이에서 ‘이중 식민지화’되고 있다”고 경고하며 유럽 자본의 적극적인 역내 투자를 강조했다.
29일(현지 시간) CNBC에 따르면 니콜라 뒤푸르크 은행장은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글로벌 사모투자 컨퍼런스에서 “내 생각이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우리는 이중으로 식민지화되고 있다”며 “산업적으로는 중국에, 디지털로는 미국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고, 지금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이 중국 산업과 미국 기술에 밀리고 있으며, 모은 돈을 유럽 기업이 아닌 미국 테크 기업에 투자하거나 중국 제품 사는 데 써 역내 경제 쇠퇴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뒤푸르크 은행장은 이 같은 이중 식민화의 원인을 유럽의 막대한 민간·기관 자본이 역내에 투자되지 않는 데서 찾았다. 유럽의 초고액 자산가, 패밀리오피스, 자산운용사들조차 부동산 같은 보수적 자산에 투자하고, 위험을 감수할 때는 자국 혁신기업이 아닌 미국 빅테크에 돈을 쏟아붓는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의 저축이 위험자산에 투자될 때는 미국으로 간다”고 지적했다.
뒤푸르크 대표는 프랑스의 양자컴퓨팅 스타트업 콴델라(Quandela)를 사례로 들었다. 뒤푸르크 대표는 이 기업이 일부 미국 경쟁사를 능가하는 칩을 개발했지만, 유럽에서 민간 자본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약 1000억 유로(약 164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비피프랑스는 콴델라에 세 차례 투자했으며, 이 기업은 총 6185만 유로(약 1016억원)를 조달했다.
뒤푸르크 대표는 이런 현실이 깊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래 지배력 확보를 위해 고위험·고성장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는 것을 미국의 ‘캘리포니아(실리콘밸리) 문화’로 규정했다. 이어 “유럽에 그런 문화가 없다면, 관광, 와인, 부동산, 그리고 미국 테크 같은 곳에만 계속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금처럼 위험 회피만 고수할 경우 유럽 사람들은 계속 안전한 전통 산업이나 남의 나라 기업에만 투자해 정작 자국의 미래 산업을 키우지 못할 것이라는 쓴소리다.
뒤푸르크 대표는 “유럽은 자체 이익을 위해 자본 배분의 공격성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앞서 영국의 벤처캐피털 펀드 20VC 창립자인 해리 스테빙스 역시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은 위험 회피(risk-off) 사고방식을 갖고 있고, 미국은 위험 감수(risk-on) 성향을 갖고 있다”고 비슷한 지적을 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펀드가 8억~8억5000만 달러를 조달했는데, 그중 7억5000만 달러가 미국에서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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