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야 합의 불발로 임시예산안(CR) 처리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1일 오전 0시 1분(현지 시각)부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에 돌입했다. 가뜩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대전’ ‘좌파의 전쟁’ ‘물가·고용 악화’ 등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 정치·경제 불확실성이 한층 더 커진 셈이다. 금융 시장도 셧다운에 따른 혼란으로 금값과 주가가 동시에 치솟는 등 요동을 치고 있다. 월가에서는 셧다운 기간 백악관 주도의 연방공무원 대량 해고 등 초유의 상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3일(현지 시간) 예정된 9월 고용보고서 등 각종 물가·노동·성장 지표도 제때 발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융 시장은 당장의 셧다운 위기를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연내 기준금리 인하 폭 확대 기회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연방 부채 탕감을 위한 공무원 해고와 금리 인하는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던 시나리오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 기간에도 관세 부과 작업 만큼은 쉬지 않을 예정이다. 다만 셧다운 상황이 장기화하면 공무원 대량 해고로 고용 시장이 악화하고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더 이상 호재로서 힘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 셧다운의 명분은 보건복지 예산을 둘러싼 갈등이지만, 그 이면에는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극단적으로 나뉜 좌우 이념적 충돌이 자리하기에 파국이 단기간에 봉합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수순…트럼프 “공무원 대량 해고할 것”
30일 미국 연방 상원은 7주짜리 공화당의 임시예산안을 재표결에 부쳤다가 찬성 55 대 반대 45로 부결시켰다. 민주당이 자체 발의한 임시예산안도 표결에 부쳐졌으나 함께 부결됐다. 이에 따라 1일 오전 0시 1분부터 연방정부는 그대로 폐쇄됐다. 미국 연방의회는 앞서 지난 19일에도 연방정부 예산안 처리 시한을 11월 21일까지 더 연장할 수 있게 하는 임시예산안을 처리하려 했지만, 하원만 통과한 채 상원의 벽은 넘지 못했다. 공화당은 상원에서 53석을 갖춘 다수당이지만 예산안 통과에 필요한 60표를 얻기 위해서는 민주당 47석 가운데 7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임시예산안은 연방정부 기관들이 7주 동안 예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단기 지출 법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9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여야 지도부와 전격적으로 회동했지만 합의점 도출에는 실패했다. 공화당의 마이크 존슨(루이지애나) 하원의장과 존 슌(사우스다코타) 상원 원내대표, 민주당의 하킴 제프리스(뉴욕) 하원 원내대표와 척 슈머(뉴욕) 상원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이날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은 ‘오바마케어(ACA)’ 보조금 지급 연장안에 대한 이견만 확인한 채 헤어졌다. 민주당은 올해 말 종료되는 ACA 보조금 지급을 더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내년 회계연도(2025년 10월 1일∼2026년 9월 30일) 연방정부 예산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
슈머 원내대표는 29일 회동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우리 사이에 여전히 큰 간극이 있다”며 “그들의 법안(공화당의 임시예산안)에는 민주당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제프리스 원내대표도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와의 대화는 솔직하고 직설적이었지만 여전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차이가 존재한다”며 “민주당은 헬스케어를 해치는 공화당의 법안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민주당이 셧다운을 원한다”며 “셧다운이 되면 해고를 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을 자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어떤 나라도 불법 이민자들과 이 나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의료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비용을 댈 여력이 없다”며 “그런데 민주당은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우리는 셧다운을 정말로 원하지 않지만, 셧다운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없앨 수 있다면 그것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것들”이라며 “민주당은 국경 개방을 원하고 남성이 여성 스포츠에 출전하는 것과 모두를 위한 트렌스젠더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케어’ 보조금 연장 두고 여야 ‘평행선’…트럼프 1기 때 35일 ‘최장’
셧다운 제도는 1977년 지미 카터 행정부 때부터 미국 정가에 자리잡았다. 그 이전까지는 예산안이 의회에서 제때 통과되지 못하더라도 정부를 계속 가동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셧다운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만 여덟 차례 발생한 것을 비롯해 1980년대 이후에만 열네 번 벌어졌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만 셧다운이 없었다. 가장 최근 겪은 셧다운은 트럼프 대통령 1기 집권 때인 2018년 12월 22일~2019년 1월 25일에 있었다. 당시 셧다운은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 장벽 예산이 불충분하다며 거부권을 행사한 까닭에 역대 최장 기간인 35일 간 지속됐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당시 셧다운으로 인한 경제 피해가 국내총생산(GDP)의 0.02%에 해당하는 30억 달러(약 4조 2000억 원)에 달했다고 추산했다.
연방정부가 셧다운에 들어가면서 미국 여야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제프리스 원내대표의 머리 위에 멕시코 전통 모자 ‘솜브레로’을 얹고 수염을 덧붙인 합성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슈머 원내대표는 이날 의회에서 “셧다운이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고 우리도 원하지도 않고 미국 국민들도 원하지 않는데 대통령은 마치 10살짜리 아이처럼 인터넷에서 장난을 치느라 바쁘다”며 “정부가 셧다운되면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에도 트루스소셜에 “번영하는 우리나라를 계속 운영하기 위해 소수당 급진 좌파인 민주당이 표를 대가로 내세운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요구 사항을 검토했다”며 “그 결과 민주당 지도부와 어떤 회동도 생산적일 수 없다고 결정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슈머 원내대표와 제프리스 원내대표가 20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회동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일을 거론하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발언을 한 것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불법 체류자 무료 의료 서비스를 위한 1조 달러 이상 신규 지출, 납세자에 대한 미성년자 성전환 수술 비용 부담 강요, 사망자의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 명단 포함, 불법 범죄자에 대한 국경 재개방 등을 요구한다”며 “이러한 급진 좌파 관점과 정책이 내가 대선에서 7대 경합주와 전체 투표까지 역사적 압승을 거두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높은 세금, 국경 개방, 폭력 범죄자 처벌 금지, 남성의 여성 스포츠 출전 등 민주당은 의회에서 국민이 원하지 않는 급진 좌파적인 정책만 추진하려고 한다”며 “국민은 상식을 선택했고 그것이 바로 내가 지키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수 업무 외 정부 활동 중단…9월 고용보고서 등 ‘깜깜이’ 속 관세만 강행
셧다운 상태에서는 연방정부 자금이 집행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법 집행, 국경 수비, 핵심 복지 등 일부를 제외한 상당수의 정부 기관 활동이 추가 예산 승인 때까지 중단된다. 연방공무원들에 대한 급여 지급도 중지돼 공공 안전 등 필수 분야 직원은 무급으로 근무하고 비(非)필수 분야 직원은 무급 휴직 상태가 된다. 군인, 연방 법 집행관, 항공교통 관제사, 교통안전국(TSA) 요원, 공공병원 직원 등 활동 근로자의 급여도 셧다운 해소 뒤 소급해서 제급된다. 앞서 AP통신은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이 각 기관에 메모를 보내 1일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과제 우선순위와 일치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파악하고 관련 공무원 수를 줄이는 방안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셧다운에 들어가면 3일 예정된 미국의 9월 비농업 일자리 지표도 발표되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노동부가 26일 공개한 연방정부 셧다운 비상계획에서 노동통계국(BIS)이 어떠한 경제 보고서도 발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노동부의 고용보고서는 연준이 금리 결정을 하는 핵심 지표이기에 발간되지 않을 경우 경제에 큰 혼란을 줄 수 있다. 연준은 10월 28~29일에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고 금리 변동 여부를 논의한다. 연준은 9월 17일에도 고용 둔화를 이유로 들며 올 들어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셧다운이 장기화되면 노동통계국이 10월 15일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 보고서 공개도 미뤄질 수 있다. WSJ는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 보고서와 10월 30일 예정된 3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속보치) 발표도 셧다운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에 반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작업은 계속 이어진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29일 공개한 ‘질서 있는 셧다운 계획’에서 “수입품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업무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반도체 등 품목 관세의 근거가 되는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른 조사가 중단되지 않을 전망이다. 무역법 232조는 국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품에는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이다. 현재 상무부는 반도체를 비롯해 목재, 핵심 광물, 항공기, 제트 엔진, 무인항공기 시스템, 폴리실리콘, 풍력 터빈 등의 수입품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자칫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에 주가·금값 뜀박질…장기화 땐 침체 공포가 더 커질 듯
금융 시장은 셧다운 위기를 두고 연내 금리 인하폭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 우선 주목했다. 실제 이날 뉴욕 3대 증시는 장중 약세를 보이다가 셧다운 위기가 고조되자 동반 상승으로 마감했다. 특히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사상 최고가까지 갈아치웠다. 금 선물 가격도 트로이온스당 390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오르면서 역대 최고가를 다시 썼다.
미국의 소비자심리가 후퇴한 점도 금리 인하 기대를 키웠다. 미국 경제분석 기관 콘퍼런스보드(CB)에 따르면 9월 소비자신뢰지수는 94.2로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이는 시장 전망치(96.0)도 밑돈 수치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8월 미국 구인 건수는 722만 7000건으로 시장 전망치(720만 건)를 살짝 웃돌았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은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50bp(bp=0.01%포인트) 인하될 확률을 전날 66.8%에서 76.1%로 대폭 올려 잡았다. 반면 25bp만 내릴 확률은 전날 30.6%에서 22.8%로 내려 잡았다. 금리 동결 확률은 2.6%에서 0.7%로 주저앉았다. 금리 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연방정부 부채 감축, 관세 효과 극대화를 위해 연준에 줄기차게 요구한 사안이기도 하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민주당은 셧다운 직후 쓸 초단기 예산안 준비에 나섰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슈머 원내대표는 정부 운영을 셧다운 직후 7∼10일 내에 재개하기 위한 초단기 예산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7∼10일 초단기 예산안은 상원에서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야 통과될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가 셧다운 상태에 돌입하면 이달 연준의 금리 결정도 혼선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고용과 물가 지표가 ‘깜깜이’ 상태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듯 경제 충격을 추정해야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셧다운 상태가 장기화하고 대량 해고와 관세 정책만 잇따를 경우 글로벌 금융 시장이 떠안을 불확실성은 유례가 없는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침체 공포가 금리 인하 기대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
올해 FOMC 회의에서 금리 투표권을 갖는 수전 콜린스 보스턴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30일 뉴욕에서 가진 미국 외교협회 강연에서 “여전히 다소 긴축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서 더 높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더 불리한 노동시장 상황, 혹은 두 가지가 모두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