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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 거장' 김인중 신부 "유리창에 빚은 '빛의 기도'…나눌수록 더 밝아지죠"

■'빛의 화가' 김인중 신부 인터뷰

동양화 여백에 서양화 색채 교차

납선 없앤 파격적 방식으로 표현

연말까지 국내 성지 2곳서 특별전

빨간빛으로 '순교와 생명' 담아내





스테인드글라스는 교회 내 아름답고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선교 목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글자를 모르던 대중을 위해 성서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전하고 하늘의 화려한 빛을 어둠 속 곳곳에 비추며 신앙심을 고취시켰다. 종교화의 영역에 머물렀던 스테인드글라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예술가가 있다. ‘빛의 화가’ 베드로 김인중 신부다. 스위스 일간 르 마탱(Le Matin)은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등을 선정하면서 김 신부를 가장 먼저 꼽았다.

그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각각 ‘빛으로 그리는 시’와 ‘생명을 위한 빛’ 특별 전시회를 연다. 스테인드글라스뿐만 아니라 회화, 세라믹, 유리 공예 등 김 신부의 다양한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김 신부를 최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전시장에서 만났다.




1940년생인 김 신부는 서울대 미대에서 서양 미술을 전공하고 1969년 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 스위스 프리부르대로 유학을 갔다가 사제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림이 곧 기도’였던 그는 도미니코 수도회 사제로 화업을 이어가면서 기존과 다른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을 시작했다.

“예수님의 사명은 해방이고, 예술 역시 해방을 위한 것입니다. 유리를 납선으로 가두거나 나누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스테인드글라스에 도전했습니다.”

그는 납선으로 유리를 조각조각 나누던 기존의 방식 대신 거대한 유리판을 하나의 캔버스로 삼았다. 용매에 푼 유화용 물감을 붓 끝에 묻혀 유리판에 스며들듯 화려한 색을 펼쳐나갔다. 마치 화선지에 먹이 번지게 하듯이. 파격적 형식인 그의 작품이 지역 성당에 적용된다고 하자 처음에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작품이 완성되자 주민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성당에서 한 시간 동안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보며 눈물을 쏟았고 우울증이 사라졌다’고 한 19세 소녀도 있었다. 1989년 프랑스 앙굴렘 세례자요한 성당을 시작으로 브리우드 생 줄리엥 성당, 샤르트르 대성당, 벨기에 리에쥐 생폴 대성당 등 유럽 약 50개 성당에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벨기에 리에지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진 제공=루아르 아틀리에


작업 중인 김인중 신부. 사진 제공=루아르아틀리에


벨기에 리에지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진 제공=루아르 아틀리에


KAIST 학술문화관 4층에 설치된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국내에선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학술문화관 천장, 용인 신봉동 성당 등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최근에는 동화 ‘미녀와 야수’의 배경이 된 프랑스 샹보르성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당초 전시는 올해 3월부터 8월 말까지 예정됐으나 입장객이 끊이지 않자 올해 11월까지 연장됐다.

동양적, 서양적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화풍에 대해 김 신부는 ‘세계화’라고 말한다. 서양화에서 볼 수 없는 선과 여백, 동양화에는 부족한 화려한 색채가 생동감 있게 교차하며 ‘그 무엇’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하다. “천사가 그림을 그렸다면 김인중의 작품과 같았을 것”이라는 예술비평가 웬디 베케트 수녀의 찬사가 저절로 이해된다.



김 신부는 한국의 순교자와 성인들을 기리는 장소에 열리는 이번 국내 전시에서 특히 빨간색을 강조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빨간색은 순교를 하면서 흘리는 피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생명과 정열의 빛깔이기도 합니다. 곧잘 정치적으로 오용되지만 실은 아주 고귀한 색이죠.” 그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빨간 빛들이 다른 색과 어우러져 리듬감과 경건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고령에 난청까지 겹쳤지만 김 신부는 프랑스와 논산 강경의 아틀리에를 오가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 중에도 “손끝이 근질근질하다”고 말할 만큼 창작 의욕이 넘친다. 그는 끊임없이 들어오는 작품 의뢰를 소화하기 위해 쉼 없이 작업에 매달리고 있으며 현재 프랑스와 벨기에의 성당에서 제작 의뢰를 받아 둔 상태다. 국내에서는 고향인 논산시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 2028년까지 아트플랫폼으로 탈바꿈할 강경포구 인근 미곡 창고에 설치할 작품도 맡겼다.

‘빛의 예술가’로 불리는 그에게 빛·신앙·예술은 곧 같은 말이다. 사제이자 예술가인 그는 작품을 세상과 나누는 것으로 자신의 미션을 실천하고 있다. “물질은 나누면 몫이 줄어 서로 다투게 되지만 빛은 나눌수록 더 밝아집니다. 제 작품이 설치된 성당에 와서 ‘빛을 받아 갑니다’라며 행복해 하는 이들의 말이 어떤 평론가의 칭찬보다 소중합니다.”

김 신부의 두 전시는 12월 21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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