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이 국가의 행복과 시민의 덕을 실현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봤다. 그는 자연법이든 실정법이든 법은 시민들을 올바르게 이끌며 공동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하는 필수적인 질서라고 믿었다. 하지만 법에 과잉 의존하는 사회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저서 ‘정치학’에서 “기존의 법을 새 법으로 쉽게 바꾸면 법의 힘은 약해지기 마련”이라며 “법을 바꿔서 실익이 크게 없다면…내버려두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대한민국 국회는 입법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2만 3566건으로 역대 최대였다. 처음으로 2만 건을 넘었던 20대 국회보다 500여 건이 더 늘었다. 16대 국회 당시 2000건을 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20년 동안 10배 이상 증가했다. 21대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은 9063건이다. 국회미래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1대 한국 국회를 기준으로 같은 기간 미국 의회는 709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독일은 473건이었고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243건, 139건의 법안을 처리했다. 일본은 이 기간 377건의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우리나라 국회가 9000건이 넘는 법안을 처리하는 동안 이들 다섯 나라는 모두 합해서 1941건의 법을 만들었다.
출범한 지 1년 7개월여 지난 22대 국회는 어떤가.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5일 기준 22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1만 5440건이다. 21대 국회에서 같은 기간 제출된 1만 3895건의 법안 수와 비교하면 11.12%나 증가했다. 입법 실적으로만 놓고 평가하면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공복이라는 칭찬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국회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눈속임 법안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실상 똑같은 내용의 법안을 두 개 이상의 법으로 이름만 달리해 적용하는 ‘복사해서 붙여넣기’ 방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법안 발의 상위에 오른 여야 의원의 사례를 보면 공영방송 관련 기관 소속 임원의 자격과 관련한 내용을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방송문화진흥회법’ ‘방송법’ 등으로 이름만 달리해 발의한 법안들과 학교나 사회복지시설에 지역 농축산물을 우선 사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주체만 달리한 ‘영유아보육법’ ‘학교급식법’ ‘사회복지시설의 급식안전 지원 법률’ 등 쪼개기 법안들이 많다. 다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일부 표현만 바꿔 제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법안 발의가 남발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정치 양극화와 발의 건수로 의정 활동을 평가하는 풍토가 주된 이유로 꼽힌다. 계엄·탄핵 정국에서 여야는 정략적 이해가 반영된 법안들을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책임이 있는 정당을 해산시키는 정당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고 국민의힘은 부정선거 이슈를 부각시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법 개정안 등을 제안했다. 상대 정당의 부정적 낙인 효과를 노리는 ‘추미애 방지법’ ‘나경원 방지법’ 등 네이밍 법안도 잇따랐다. 12·3 계엄 이후에는 60건이 넘는 계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발의한 ‘반짝 법안’도 줄을 이었는데 정치권에서는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달려드는 견인차와 같다며 이를 ‘렉카법’이라고 부른다. 민주당은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 상장기업의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상법 개정안에 이어 자사주 의무 소각 등을 담은 ‘더 더 센 상법 개정안’까지 서두르고 있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이미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금 우리 국회의 보여주기식 과잉 입법 행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고가 무색할 정도다. 법안 개정의 긍정적인 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정책보다는 정쟁에 치우친 입법 과잉은 정치 혐오와 사회 양극화를 되레 부추길 수 있다. 법안 남발은 행정 기능 확대로 인해 예산 증대와 관료제 확대로 이어지는 부작용도 있다. 선진국 의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입법 영향 분석을 시행하고 있다. 의원들은 입법 실적 부풀리기에 매달리지 말고 법 시행 영향을 사전에 치밀하게 분석해 꼭 필요한 법을 보다 더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회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은 포기하고 법안만 양산하는 한국 정치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연 어떤 점수를 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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