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혈증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피타바스타틴'이 기존 항암제에 내성을 보이는 삼중음성유방암 환자에서 항암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려대구로병원은 서재홍 종양내과 교수와 김지영 고려대의대 암연구소 교수 공동 연구팀이 인공지능(AI) 기반 3D 도킹 분석을 통해 피타바스타틴이 삼중음성유방암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9일 밝혔다.
유방암은 암세포 표면에 에스트로겐 수용체,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사람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형(HER2)이라는 단백질이 발현되는지 여부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삼중음성유방암은 전체의 약 10~15%를 차지하며, 유방암 중에서도 치료가 가장 어려운 유형으로 꼽힌다. 3가지 단백질이 모두 없으니 호르몬 치료나 HER2 표적치료제가 적용되질 않아 파클리탁셀과 같은 세포독성 항암제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치료 후에도 재발과 전이가 흔해 예후가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치료 과정에서 살아남는 암 줄기세포가 약물 내성과 종양 재발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이 과정에서 암세포의 생존을 돕는 'Mcl-1 단백질'이 과도하게 증가해 항암 효과를 더욱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고됐다.
연구팀은 Mcl-1 단백질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약물을 찾던 중 고지혈증 치료제인 피타바스타틴이 Mcl-1 결합 부위에 직접 작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음을 확인했다. 피타바스타틴은 일본 제약사 코와와 닛산화학이 공동 개발한 고지혈증 치료제 '리바로'의 성분명이다. JW중외제약이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국내 임상을 거쳐 2005년 들여왔다. 임상에서 20년 넘게 고지혈증 치료제로 쓰이며 안전성이 검증됐다. 또 여러 연구에서 암세포 성장 억제나 세포 사멸 유도 효과가 보고되며 항암제 재창출의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다만 항암 작용을 일으키는 기전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였다. 약물 재창출은 시판 중이거나 임상 단계에서 중단된 약물을 대상으로 새로운 적응증을 찾아내는 전략이다. 안전성은 이미 검증된 만큼 신약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획기적으로 단축된다.
연구팀은 피타바스타틴이 Mcl-1 단백질의 BH3 결합 부위에 직접 결합해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피타바스타틴을 투여하자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빠르게 무너지고 활성산소가 증가하며 세포 에너지원인 ATP가 감소했다. 암세포가 스스로 사멸 과정에 들어가는 명확한 항암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일반 항암제로 제거하기 어려운 암 줄기세포의 수가 유의하게 감소하는 효과가 확인돼 재발·전이를 일으키는 근본 세포까지 억제하는 결과를 보였다. 피타바스타틴은 파클리탁셀에 내성을 가진 세포에서도 내성의 핵심 요인인 Mcl-1과 약물의 경구 흡수를 방해하는 막 수송 단백질 P-glycoprotein의 발현을 감소시켰다. 또 암세포의 생존 신호인 AKT·STAT3 경로를 억제해 내성 상태에서도 강력한 항암 효과를 유지했다. 연구팀이 피타바스타틴과 파클리탁셀을 함께 투여한 결과 종양 억제 효과가 크게 증가하는 시너지 효과도 관찰했다.
서재홍 교수는 "파클리탁셀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군에서도 적용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임상적 가치가 있다"며 "이미 안전성이 검증된 약물이기 때문에 기초 및 전임상 단계로 빠르게 확장할 수 있고, 향후 암 줄기세포 표적 치료 연구에도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실험 혈액학&종양학(Experimental Hematology & Oncology)' 최근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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