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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4월17일] 맨해튼 상수도회사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16 17:54:48상수도회사 설립방안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뉴욕의 지하수원이 오염되고 1798년에는 황열병에 시달렸던 터. 깨끗한 물을 공급하자는 데 여야가 따로 없었다. 정작 설립을 주도한 애런 버 뉴욕주 상원의원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1799년 4월17일, 주의회가 ‘맨해튼 상수도회사’를 인가할 때 그는 ‘주식투자나 차용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자본잉여금으로 삼을 수 있다’는 조항 하나를 슬쩍 집어넣었다. 은행업 진출을 위 -
[오늘의 경제소사/4월16일] 라팔로 조약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15 17:55:531922년 4월16일, 북부 이탈리아 제노바. 세계경제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이 충격에 빠졌다. 독일과 소련이 쌍무조약을 맺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전쟁배상금과 채무의 상쇄, 국교 재개, 최혜국 대우가 골자인 조약에 영국과 프랑스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유럽의 경제질서를 주도하려고 미국의 참가까지 배제한 채 개최한 회의에서 주객이 전도됐으니까. 독일이 회담장 밖 라팔로 마을에서 소련과 만난 -
[오늘의 경제소사/4월15일] 양무호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14 17:57:26‘저게 정녕 우리 군함인가.’ 1903년 4월15일 인천에 입항한 양무호를 본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엇보다 덩치가 컸다. 일본 화물선의 크기가 평균 580톤이던 시절에 3,432톤짜리 철선이 들어왔으니 놀랐음 직하다. 고종황제가 ‘나라의 힘을 키운다’며 하사한 ‘양무(揚武)’라는 이름의 대한제국 최초 군함에 조선은 우쭐했으나 내용은 속 빈 강정이었다. 영국이 1881년 건조한 원양화물선 팰러스(Pallas)호를 일본 -
[오늘의 경제소사/4월14일] 닷컴 버블 붕괴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13 17:53:232000년 4월14일 뉴욕. 시장이 퍼렇게 얼어붙었다. 폭락 탓이다. 다우존스와 나스닥지수가 각각 8%와 9.4%씩 주저앉았다. 특히 사상 최대의 하락을 기록한 나스닥의 충격이 더욱 컸다. 닷새 동안의 낙폭은 25.5%. 빌 게이츠는 111억달러를 날렸다. ‘피의 금요일’로 불렸던 이날의 폭락은 인터넷 버블, 닷컴 버블의 소멸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 폭락의 여파는 지구촌 전역으로 번졌다. 한국에서는 거래소시장을 넘어설 기세 -
[오늘의 경제소사/4월12일] 은자 피에르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11 18:02:19‘이슬람과 싸워 예루살렘을 되찾으라.’ 종교적 광기에 빠진 한 신부의 선동에 사람들이 낫과 쟁기를 내려 놓고 칼을 잡았다. 선동가의 이름은 은자 피에르(Pierre l'Ermite). 성지를 회복하라는 베드로의 계시를 받들자는 그의 선동에 넘어간 민중은 정확한 행선지도 모른 채 무리를 지어 무작정 동쪽으로 떠났다. 십자군전쟁이 이렇게 시작됐다. 피에르는 출생과 성장이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의 인물. 로마 교황 우르바노 2세 -
[오늘의 경제소사/4월11일]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10 17:50:39도나우의 로마군단이 사령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를 황제로 옹립했다. 193년 4월11일, 48번째 생일에 황제로 추대된 세베루스는 로마로 쳐들어갔다. 당시 로마는 혼란의 시대.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도 포악한 황제로 묘사됐던 코모두스가 살해된 뒤 황제직이 경매로 정해지던 시기였다. 로마로 진격해 제위를 차지한 세베루스는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황제였다. 혈통은 로마인이었지만 지금의 트리폴리에서 태어나 전장을 -
[오늘의 경제소사/4월10일] 독일 함대법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09 22:13:44전함 19척, 대형 순양함 12척 건조. 독일제국 의회가 1898년 4월10일 의결한 함대법(Flottengesetz)의 골자다. 특징은 장기 계획. 7년간 4억890만 마르크를 배정, 의회의 동의 없이도 예산이 지출되도록 만들었다. 신형 군함 건조가 해마다 예산 삭감에 걸려 진전되지 못하자 황제 빌헬름 2세가 나서 특별법을 제정한 것이다. 연간 예산이 20억 마르크 남짓하던 독일은 왜 거액을 들이고 의회의 예산심의 기능까지 없애가며 함대 -
[오늘의 경제소사/4월9일] 탐피코 사건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08 17:52:41[오늘의 경제소사/4월9일] 탐피코 사건 권홍우 편집위원 멕시코 석유도시 탐피코항에 미군 6명이 발을 들였다. 유류와 식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접안도 하선도 불가능하다’는 계엄 지침에 따라 멕시코군은 미군을 체포했다. 보고를 받은 멕시코군 장성은 미군을 즉각 돌려보냈다. 내정에 간섭할 기회를 엿보고 있 -
[오늘의 경제소사/4월8일] 와우아파트 붕괴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07 17:46:461970년 4월8일 오전6시30분, 서울의 시민아파트 한 동이 폭삭 주저앉았다. 현장은 참혹했다. 입주예정 30가구 가운데 먼저 들어온 15가구 주민 41명이 중경상을 입고 33명이 깔려 죽었다. 사고 발생 나흘 전 금이 갔다는 주민들의 경고를 받아들였어도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어떻게 준공 4개월 된 아파트가 기둥 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졌을까. ‘불도저식 행정과 부실공사’ 탓이다. 와우아파트는 설계와 시공ㆍ -
[오늘의 경제소사/4월7일] 부시 & 고유가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06 17:32:381986년 4월7일 새벽2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파드 국왕과 회담을 마친 조지 부시 미국 부통령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국제유가 안정에 사우디가 적극 나선다는 언질을 받았기 때문이다. 약속을 제대로 이행한 사우디덕에 유가는 오름세로 돌아섰다. 이 대목에서 ‘유가 상승이 안정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실제로 그랬다. 1985년 11월 배럴당 31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폭락세로 돌변해 이듬해 3월 말에는 10달 -
[오늘의 경제소사/4월5일] 시베리아 출병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04 17:38:301918년 4월5일, 일본군 선발대 100여명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이닥쳤다. 명분은 거류민단 보호. 공산혁명의 혼란 속에서 일본 상인이 살해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상륙작전을 펼쳤다. 1차대전과 러시아혁명의 와중에 일본과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ㆍ캐나다 군대가 적백내전에 끼어든 ‘시베리아 출병’이 시작된 순간이다. 시베리아 출병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러시아에 제공한 총포 등 전략물자가 독일로 유출될 가능성 -
[오늘의 경제소사/4월4일] 중국인 배척법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03 17:41:29[오늘의 경제소사/4월4일] 중국인 배척법 권홍우 편집위원 1882년 4월4일, 미국 하원이 생소한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다. 법은 이름부터 고약했다.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 내용은 더욱 그랬다. ‘중국인의 미국 시민권 획득과 이민을 20년간 금지한다’는 게 골자였으니까. 이민으로 세워진 나라가 이 -
[오늘의 경제소사/4월3일] 율산 파동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02 17:43:31갑자기 철 지난 찬바람이 불었다. 시중은행장 다섯 명 가운데 두 명이 물러나고 한 명이 구속됐다. 촉망 받던 재무관료 L국장도 옷을 벗었다. 1979년 4월3일 신선호 율산그룹 회장의 전격 구속에 이은 후폭풍이다. 율산은 한국 기업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몰락한 기업. 27세의 친구 다섯 명이 단 3년 만에 굴지의 재벌을 이룬 신화와 영웅담을 남긴 기업이다. 성장비결은 집념과 아이디어. 중동에서 하역항구를 구하지 못 -
[오늘의 경제소사/4월2일] 포클랜드 전쟁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4.01 17:54:481982년 4월2일 새벽, 포클랜드가 총성에 휩싸였다. 아르헨티나군 2,000여명의 기습을 받은 영국군 80여명은 8시간 만에 대영제국의 깃발을 내렸다. 독립 이래 166년 동안 코앞의 섬을 영국에 내줘야 했던 아르헨티나는 감격에 젖었다.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시위도 자취를 감췄다. 영토분쟁을 통해 정치적 불만을 잠재우려던 대통령 갈라티에 장군은 ‘영국이 지구 반대편의 쓸모없는 섬을 위해 전쟁에 나설 턱이 없다’며 자신했 -
[오늘의 경제소사/4월1일] 홉슨
오피니언 사내칼럼 2008.03.31 18:03:12런던대학교는 그를 강사 명단에서 지워버렸다. 1889년 발표한 ‘산업생리학’에서 ‘저축이 번영의 토대를 침식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다. 미덕으로 여겼던 저축이 경기침체의 원인이라니! 학계는 물론 사회단체까지 그를 이단아로 몰아붙였다. 한창인 31세에 강단에서 쫓겨난 홉슨(John Atkinson Hobson)은 1940년 4월1일, 82세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기고와 사회비평으로 보냈다. 단 한번도 경제학의 주류에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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