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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타협·투기의 소산, 공공채무상환법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26 06:00:00‘독립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벼?’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우리 얘기가 아니다. 독립 직후 미국의 사정이 딱 그랬다. 돈이 없었던 탓이다. 지출을 줄이려 해군을 아예 폐지했어도 남은 상비 병력인 육군 80여명에게 줄 급료조차 마땅치 않았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가운데 시간이 갈수록 빚만 늘어났다. 독립전쟁 당시 무분별하게 발행된 공채와 차용증서의 합계액은 1970년 연방의 재정 규모(160만 달러)보다 46배 이 -
토끼사냥이 끝났으니…스틸야드 폐쇄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25 06:00:00스틸야드(Steelyard). 낯 익다. K 리그 포항 스틸러스 구단의 홈 경기장의 이름이니까. 하지만 ‘스틸야드’라는 이름의 저작권자는 따로 있다.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 스틸야드는 독일 지역의 자유도시들과 러시아와 스웨덴 일부 대도시 간 느슨한 연합체였던 한자동맹이 1282년 런던에 설치한 무역지대였다.** 후삼국 시대의 해상왕 장보고가 당나라 곳곳에 설치한 ‘신라방’과 성격이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
국민부터 차근차근 설득하라…휘발유 배급제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22 06:00:001942년7월22일, 미국인들이 휘발유 배급 쿠폰을 받았다. 시행 지역은 석유가 나지 않는 동부 17개주.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가 주도한 휘발유 배급제가 시행된 순간이다.* 휘발유 배급제의 이유는 간단했다. 전시 물자 절약. 비행기와 전함, 탱크를 움직이거나 동맹국에 기름을 보내기 위한 강제적 소비절약책이 휘발유 배급제였다.정작 미국 시민들은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 산유국’**에서 배급제를 시행한다는 -
갈등을 극복한 싱가포르의 번영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21 06:00:001964년7월21일 오후 2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계 2만5,000여명이 거리 행진을 펼쳤다. 예언자 무함마드 알리의 탄신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212개 이슬람 단체가 참가한 행진 열기에 고조된 오후 5시께부터 중국인들과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민족 분규가 발생한 것이다. 말레이시아 연방 싱가포르주 리콴유(李光耀) 주지사는 중앙정부에 진압 병력을 요청하는 한편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싱가포르가 -
일제의 단천 농민학살…그리고 망각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20 06:00:001930년 7월20일 함경남도 단천. 농민 위주의 군민 2,000여명이 단천경찰서로 몰려들었다. 삼림조합의 폐해에 항거하다 붙잡힌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농민 숫자가 불어나자 경찰은 무차별 발포로 맞섰다. 15명이 일제 경찰의 총탄에 맞아 즉사하고 20여명이 다쳤다. 중상자 가운데서는 추가 사망자가 나왔다.* 대공황 시기에 발생한 최초의 대중적 반일 항거인 단천 삼림조합사건과 농민학살의 단면이다. 농민학살의 도 -
신군부의 마구잡이 칼춤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19 06:00:001980년7월19일, 공포가 몰아쳤다. 계엄사령부는 전직 장관 3명과 여야의원 14명(공화 6명·신민 8명)을 연행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혐의는 ‘국가 기강을 문란케 한 정치적 비리와 부정행위’. 신군부는 이날 다른 철퇴도 휘둘렀다. 은행과 보험·증권회사 임직원 431명을 ‘금융계 숙정(肅正)’이라는 이름 아래 내친 것이다. 해직 사유는 비리. 금융권은 충격에 빠졌다. 유례가 없는 일인데다 규모도 컸기 때문이다. 불만이 많았 -
적과 함께 춤을 ...미·소 우주 도킹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18 06:00:001975년 7월18일, 대서양 상공 224㎞ 우주공간. 간격을 좁힌 미국의 아폴로 18호와 소련의 소유즈 19호 우주인들이 교신을 나눴다. 지상관제소 요원들도 숨을 죽였다. 관제소의 대형 모니터에 비친 우주선의 모습은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한참 줄인다고 줄인 실제 속도는 시속 약 3,000㎞(마하 2.45). 컴컴한 우주공간을 나는 쇳덩이 속의 우주인들은 막상 담담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소유즈) 아폴로의 모습이 보인다 -
‘박제된 지식을 거부한다…왕립학회’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15 06:00:00문제 하나. ‘어항에 살아 있는 붕어를 넣으면 무게의 변화가 거의 없지만 죽은 붕어를 넣으면 무게가 늘어난다. 왜 그럴까?’ 당대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모인 자리였지만 즉답이 나오지 않았다. 질문을 던진 주인공이 영국 국왕 찰스 2세였기 때문이다. 왕의 권위 앞에서 학자들이 미적거리는 순간 젊은 학자가 의견을 내놓았다. ‘실험을 합시다. 현상을 토론하기보다 실험이 우선입니다.’ 학자들은 선뜻 실험을 진행하지 -
스코틀랜드의 쪽박…영국 밑으로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14 06:00:001698년7월14일 에든버러 북부 라스항. 개척민 1,200명을 태운 범선 5척이 닻을 올렸다. 4개월 항해 끝에 도달한 목적지는 다리엔(Darien). 요즘의 파나마 지역인 다리엔에 도착한 스코틀랜드인들은 뉴 에든버러 건설에 착수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말라리아를 비롯한 풍토병과 자금 부족 탓이다. 1차 탐험대의 개척민 중에서 생환자는 300명에 그쳤다. 이듬해인 1699년 출항한 2차 탐험대에도 지원자 1,000명이 몰렸으나 결 -
파운드화 폭락의 85년 데자뷔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13 06:00:00파운드화 폭락과 정책 대안 부재.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이탈)의 후폭풍을 앓고 있는 요즘 얘기가 아니다. 85년 전 이맘 때 영국이 그랬다. 1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된 금본위제도에 복귀한 1925년 이래 4.86달러를 유지해온 파운드화의 가치가 불과 며칠 만에 23% 가까이 줄어들었다. 파운드 당 미화 3.75 달러. 마침 뉴욕에서 시작된 주가 대폭락으로 세계가 공황으로 빠져들던 시절. 달러와 더불어 양대 기축통화였던 -
쇼군과 덴노...누가 일본 국왕인가?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12 06:00:00일본력 1192년 7월12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쇼군(征夷大將軍)직을 받았다. 요리토모는 라이벌인 다이라 무사가문을 누른 1185년부터 일본을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인물.* 국왕보다 더한 권력을 행사하던 그는 쇼군에 제수되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바쿠후(幕府), 즉 사실상의 내각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 요리토모는 사실상의 일본 국왕으로 권력을 휘둘렀다.바쿠후의 본래 의미는 문자 그대로 천막 관청. 동쪽의 오랑 -
수수께끼의 정화 함대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11 06:00:00수수께끼의 항해가 여기 있다. 명나라 초기 환관 정화(鄭和)의 남해 대원정. 항해의 목적에서 선박의 크기까지 모든 게 의문 투성이다. 확실한 점은 정화의 대항해 이후 중국의 바다는 닫혔다는 사실 뿐이다. 폴 케네디의 명저 ‘강대국의 흥망’에 따르면 정화의 탐험 이후 중국에서 단행된 ‘해외무역과 어업의 금지는 경제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잠재적 동기들을 앗아가 버렸다.’한 마디로 정화의 원정을 이어가지 못한 -
바닥 중의 바닥 주가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08 06:00:0041.22포인트. 1932년7월8일 미국 다우존스공업평균지수(DJIA)의 종가다. 전일 대비 0.59 포인트 하락한 이날 주가는 사실상의 최저치로 꼽힌다. 왜 ‘사실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가. 이보다 더 낮게 형성된 날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저기록은 28.48포인트(1896년8월7일). 절대 수치로는 가장 낮지만 19세기 기록인데다 다우존스 지수 편입 종목이 18개 안짝이던 시절이어서 의미가 크지 않다. 신문기자 출신인 찰스 다우와 -
식빵이 나온게 88년 밖에 안됐다고? - 식빵의 창조경제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07 06:00:0088년. 식빵의 나이다. 당연히 의문이 들만 하다. 식빵의 역사가 고작 100년도 안됐다니! 인류가 원시적인 빵을 먹기 시작한 추정 시기가 약 3만년전. 고대 이집트부터는 자연 효모를 이용한 발효 빵을 먹었다고 하는데…. 맞다. 빵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러나 우리가 먹은 형태의 식빵은 역사가 짧다. 1928년 미국 미주리주에서 ‘칠리코스 제빵회사’가 내놓은 ‘썰린 빵(sliced bread)’이 효시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는 ‘썰린 -
중졸 기술자, 명총 AK-47을 만들다
오피니언 사내칼럼 2016.07.06 06:00:001947년7월6일, 소련 중부 이젭스크 병기공장. 총기설계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당시 27세)가 조립 라인을 막 빠져나온 신형소총 한 정을 집어들었다. 누적 생산량 750만정, 개량·발전형(경량화 버전인 AKM, 5.45㎜ 고속탄을 사용하는 AK-74)까지 합치면 1억정이 생산됐다는 AK-47의 첫 생산 순간이다. * AK-47 돌격소총과 라이벌격인 미국의 M-16소총 시리즈의 누적 생산량은 약 800만 정. 서방제 소총으로는 가장 많이 팔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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